복음과 사랑을 나누는 교회

수요예배

2024년 11월 13일 수요예배 설교
2024-11-14 10:17:06
이민일
조회수   26
  • 말씀봉독 : 빌립보서 2장 19-24절
  • 말씀 : 하나님을 공경하는 디모데(Timothy)

댓글

김성회장로 2024-11-19 04:47:43
2024.11.13 수요예배 성경말씀: 빌립보서 2:18-24 설교: 하나님을 공경 디모데(이건희 목사) ( 설교 주제) - 디모데의 신앙적 배경과 특징 - 바울과 디모데의 관계와 역할 - 교회의 일을 구하는 사람과 자기 일을 구하는 사람의 차이 (설교 요약) 디모데의 영적인 아들 - 빌립보서 2장 19절부터 24절까지 말씀을 한목소리로 같이 읽음 - 빌립보서 2장 19절부터 24절까지 말씀을 정리해 보면 두 사람을 거명해놓은 것을 볼 수 있음 - 그중에 한 사람이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디모데라고 하는 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그다음 주간에 에바브로디도라고 하는 사람을 좀 살펴보도록 하겠음 - 디모데라고 하는 사람은 신약 성경에 24번 정도 등장하는 인물임 - 디모데는 사도바울의 영적인 아들임 바울의 동역자 - 루스드라에서 바울이 디모데를 만나게 됨 - 디모데는 아버지는 헬라 쪽 사람이고 어머니는 유대인 또 외할머니 이렇게 연결되는 유대인 신실한 믿음의 가정의 아들로 자리매김이 되어 있음 - 디모데는 바울과 동역자의 개념으로 바울의 복음을 전하는 일 그리고 복음으로 인해서 탄생이 된 교회를 돌보는 목회자 또는 동역자 개념으로 정리하는 것이 친밀하면서도 역할에 대해서 규정해 놓을 수 있는 관계라고 볼 수가 있음 속 사도들의 활동 - 사도들로부터 직접적으로 복음의 교훈을 얻은 사람들을 속 사도들이라 부름 - 세계적으로 보면은 속 사도들을 누구누구를 칠 수 있느냐 하는 게 관심사이기는 함 - 100년 어간까지를 사도 시대라 하고 100년 이후부터는 속사도 시대라고 부름 속 사도들의 역할 - 사도들이 복음에 관한 또는 예수님에 관한 교회에 관한 저술 활동들을 함 - 환경 속에서 교회를 보호하고 크리스천들을 보호하는 입장에서도 많은 책들을 펴내가지고 복음을 옹호하고 변증을 하는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 바로 속 사도들임 - 초대교회에 많이 번져 있었던 이단 사상 중에 영지주의 이런 주장들을 막아세우는 데에 속 사도들의 역할이 컸음 - 디모데는 바울의 영적인 아들이고 동역자고 바울이 100년 이전의 인물이기도 하고 복음을 직접적으로 들은 사도들과 같이 활동을 했다고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음 디모데의 장점과 단점 - 디모데는 신실한 믿음의 소유자이기도 하고 신앙의 전통을 잘 물려받은 사람이기도 하지만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임 - 몸이 좀 묘약해가지고 건강상의 문제 때문에 복음 전파하는 일을 열심히 해나가는데 항상 걸림돌이 되기도 했음 -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 내용들을 보면 디모데를 계속해서 격려하고 용기를 심어주는 내용들이 많음 - 디모데의 드러난 장점과 단점이 바울에게 영향을 끼친 것이라고 볼 수가 있음 바울이 디모데를 동역자로 선택한 배경 - 구약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유대 사회 속에서 라비 선생님이라고 하는 칭호를 가질 수 있음 - 디모데도 어머니 쪽의 영향으로 구약 성경에 대해 해박한 신앙관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임 - 바울이 디모데를 동역자로 선택하게 된 배경도 무시 못할 내용으로 작동이 됐으리라고 보임 종교개혁의 정신 - 유대교의 신앙관 속에 자란다는 것은 말씀 중심의 종교라는 것임 - 말씀 중심의 종교는 개신교에도 그대로 물려짐 - 종교개혁 정신은 말씀의 종교임 - 바울은 디모데를 전령으로 파송함 -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유럽 교회로서 첫사랑임 바울의 디모데 사랑 -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파송할 만한 인물을 찾을 수는 있겠지만 디모데만큼 적당한 인물이 없다고 판단을 함 - 디모데는 빌립보 교회의 설립 과정부터를 소상하게 알고 있던 인물로 기록이 됨 바울의 선택 - 바울 입장에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구하는 사람이냐 아니면 자기의 일을 구하는 사람이냐 또는 더 넓게 보면 하나님의 일을 구하는 사람이냐 사람의 일을 구하는 사람이냐 그 판단이 서면은 그 판단대로 사람을 선택하고 파송해야 함 - 디모데는 주님의 일을 구한 사람, 하나님의 일을 구하는 사람, 사람의 일을 구하는 사람과 비교가 되니까 디모데는 훨씬 더 신실한 주의 종이었고 교회의 사람이었다라고 생각을 해볼 수가 있음 신앙생활의 목적 - 교회 일을 할 때 내가 그동안 살아왔던 세상의 경험 사회적인 경험 경륜 이런 거에만 비추어서 판단을 하는 경우 자기 일을 구할 가능성이 많음 - 어떤 경우에도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든지 또 어떤 경우에는 교회를 어떤 일반 사회 집단처럼 생각해가지고 어떤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또는 교인이나 교회를 생각한다든지 이게 다 자기 일을 구하는 것임 - 신앙생활을 아무리 오랫동안 해도 여전히 나 자신에 대한 관심 밖으로는 이 발걸음을 한 발자국도 옮기지 못하고 마는 경우가 있을 수가 있음 오늘 이 시간 주시는 하나님 말씀은 빌립보서 2장 19절부터 24절까지 말씀입니다. 빌립보서 2장 19절부터 24절까지 말씀 한목소리로 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의 사정을 알므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 밖에 내게 없음이라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내 일이 어떻게 될지를 보아서 곧 이 사람을 보내기를 바라고 나도 속히 가게 될 것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아멘 오늘은 사도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 내용 가운데에서 19절부터 이렇게 2장을 정리해 보면 두 사람을 거명해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 한 사람이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디모데라고 하는 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그다음 주간에 에바브로디도라고 하는 사람을 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첫 번째 인물 디모데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흔히 들을 수 있는 이름이다라고 여겨지지는 않지만은 외국인들 가운데에 이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또 꽤 됩니다. 티모시라고 하는 이름 바로 이제 디모데거든요. 그러니까 외국인들이 성경에 나오고 있는 인물들을 부모나 또는 조상들이 그 이름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이름을 지어주는 경우가 참 많잖아요. 아브라함도 그렇고 이삭도 그렇고 야곱 요셉 여기 이제 신약 성경에 바울 또 여기 디모데 많죠. 또 예수님의 제자들도 많고요. 여기 이제 디모데라고 우리가 발음하고 있는 그 사람이 영어식 이름이 티모시다라고 하는 바로 이 디모데에 관한 그런 내용이 되겠습니다. 신약 성경을 쭉 살펴보면은 이 디모데라고 하는 사람이 몇 번 정도 등장하는가 그대로 헤아려 보면 되는 거니까요. 총 24번 등장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6번 등장하고 바울의 편지에 보면 13번 정도 등장을 하고요. 나머지는 이제 디모데서하고 히브리서 같은 곳에 이 디모데라고 하는 이름이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 24번 정도 등장하는 인물이다 하면 적게 등장하는 인물은 아니다. 그렇게 봐도 틀리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신약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님에 대해서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 그리고 바울 그리고 디모데 뭐 그렇게 연결이 되지 않겠는가 물론 하는 일의 중요성으로 볼 때는 바울과 함께 1차 전도 여행까지 했던 바나바라고 하는 사람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이름이 되겠죠. 어쨌든 이 디모데라고 하는 사람은 신약 성경에 24번이나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만큼 잘 알려진 인물이고 또 오늘이 이제 결론적으로 그런 이야기가 되겠지만은 이가 어떤 신앙 성향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이냐 그것이 이제 제일 중요한 문제가 되겠습니다. 이 디모데는 명실상부하게 사도바울의 영적인 아들입니다. 실제적으로 낳은 아들이 아니고 신앙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부자지간과 같은 그런 인물이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은 그런 표현이 나와 있죠. 22절에 보면은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과 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자식이 아버지에게 하는 것처럼 그러니까 바울도 이 디모데를 자기의 아들처럼 여겼는데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인 아들로 자리매김이 돼 있다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죠. 그 사진을 지도 사진이 되겠습니다마는 처음부터 바울이 전도 여행을 할 때에 처음부터 등장했던 인물은 아니고요. 사도행전 16장에 따르면은 바울이 이제 1차 전도여행을 끝내고 그리고는 바나바하고 헤어지지 않습니까? 그리고는 제2차 전도여행을 할 때에 바울은 신라하고 동행을 하는데 그때에 바울이 저기 큰 글씨로 되어 있는 루스드라 지방 갔을 때에 만난 사람이 이제 이 디모데라고 하는 사람이다 하는 것을 확인을 해볼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 루스드라라고 하는 지역은 바울과 개인적으로 이렇게 판단을 해보면은 바울의 고향 다소하고 그리 멀지 않은 지역으로 보여집니다. 옛날이기는 하지만은 어쨌든 간에 이 루스드라라고 하는 곳에서 바울이 2차 전도여행을 쭉 가다가 얼마 가지 않아서 이곳에서 디모데를 만나게 되었다. 그런 이야기죠. 디모데는 아버지는 헬라 쪽 사람이고 어머니는 이제 유대인 또 외할머니 이렇게 연결되는 유대인 신실한 믿음의 가정의 아들로 자리매김이 되어 있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루스드라에서 바울이 디모데를 만나게 되었는데 우리가 흔히 이제 루스드라 그렇게 발음을 하지만은 위스트라라고 하는 지명이고 이곳은 현재로 보면은 하툰사라이라고 하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옛 2천년 전에 루스드라의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아주 조그마한 고울 정도로 이제 퇴락한 것이다라고 생각을 해볼 수가 있습니다. 이루스드라라고 하는 이름의 뜻이 양의 무리라고 하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다 이제 보면은 어떤 유목민 생활 그런 생활을 주로 하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터전 그런 중에서 디모데가 있었고 디모데는 아버지는 헬라 사람이었고 어머니 쪽은 유대인 피였다. 그래서 디모데에게 할례를 베풀고 그리고는 자기의 수하에 두었다. 이게 이제 처음에 바울과 디모데의 만남을 정리해 볼 수 있는 그런 내용이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일단 영적인 아들 그리고 바울은 디모데에게 있어 영적인 아버지인데 사실은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개념으로 그 관계성을 설명을 하자면 뭐냐 하면은 동역자라는 거지 동역자 그러니까 바울과 디모데는 복음을 전하는 일 그리고 복음으로 인해서 탄생이 된 교회를 돌보는 목회자 또는 동역자 개념으로 정리하는 것이 친밀하면서도 어떤 역할에 대해서 규정해 놓을 수 있는 그런 관계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이 디모데 영어 이름으로 티모시 헬라 말로 보면은 티모데우스 이 디모데라고 하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을 존경하다 공경하다 경외하다 그런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 쪽의 신앙을 따른 이름은 아니다라고 봐도 무리는 아니겠습니다. 디모데가 주로 활동했던 시기 그것은 서기 30년경부터 96년경까지로 사람들은 파악을 하고 있습니다. 이때는 예수님께서 그냥 우리가 편하게 계산을 해보면은 33의 운명을 하셨다.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 1년 1년부터 33 그리고 바울 베드로 또 요한 90년대 100년대 이렇게 따져보면은 복음의 1세대의 일꾼으로서 그 역할을 감당했던 인물이라고 평가를 해볼 수가 있겠습니다. 30년경부터 96년경 사이 그러니까 이때는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시고 그리고 예수님이 직접 뽑아 세운 사도들이 이 부활의 복음 또 복음의 온전성 이런 것들을 아주 왕성하게 전파할 때죠. 그 숱한 핍박과 환란과 고난 가운데서도 그러니까 이 시대를 정리해서 표현을 하면은 디모데가 활동하던 시대에는 사도 시대였다 그렇게 부를 수가 있겠습니다. 굳이 그것을 사도 시대라고 부르는 것은 그거는 이제 17세기경부터 이런 정리가 되어서 오늘날까지 우리도 그런 호칭을 사용을 합니다마는 서기 100년경까지를 거간까지를 사도 시대라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면 100년 이후부터를 뭐라고 부를 수 있느냐 하면은 속 사도 시대 그렇게 부를 수 있어요. 속 사도 시대 이 속 사도 시대라고 하는 이 말은요. 사도는 아니지만은 사도들로부터 직접적으로 복음의 교훈을 얻은 사람들 이해가 되시죠 그러니까 물론 우리가 지금 2천년의 교회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 지금의 특히 목회자들이 어떤 신앙관을 물려받은 사람들이냐 그러면 가톨릭도 마찬가지고 개신교도 마찬가지예요. 사도들의 신앙 전승을 이어받은 사람들 그런 표현을 사용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들에게서 그렇다면 2천년 지난 지금 우리가 직접 무슨 가르침을 받았느냐 그건 아니에요. 신앙을 그렇게 이어왔다 하는 표현이고요. 그런데 이 속 사도들은 예수님이 뽑아 세운 이 12명의 사도들을 통해서 직접 육성으로 복음을 듣고 또 이 사도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을 부를 때에 속 사도들이라 그렇게 부르는 거예요. 이제 세계적으로 보면은 이 속 사도들을 누구누구를 칠 수 있느냐 하는 게 관심사이기는 합니다마는 이렇게 많지는 않아요. 예를 들면 로마의 클레멘트라고 하는 분, 또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라고 하는 분 서모나 교회는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그런 속 사도죠. 교부라고도 부르 폴리캅 그렇죠 순교당한 폴리감 서원학교회 또 로마의 헐머스 또 알렉산드리아의 바나바, 히에라폴리스의 파피아스 이런 분들 대체적으로 이런 분들을 속 사도라고 불러요. 그러니까 여기 폴리캅 같은 분 예수님이 직접 뽑은 사람은 아니지만은 예수님이 직접 뽑은 사도들로부터 복음을 듣고 직접적으로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 이제 그런 이야기죠. 그러니까 굉장히 사도성이 강한 분들이다. 그런 차원에서 100년 어간까지를 사도 시대라 그런다면 100년 이후부터는 속사도 시대라고 부른다 하는 것을 말씀을 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이분들이 많은 저술 활동을 해요. 속 사도들이 오히려 이 사도들 또 예수님의 제자들 복음서 기록자들이야 복음서를 남겨놓은 사람들인데 이 속 사도들이 많은 복음에 관한 또는 예수님에 관한 교회에 관한 저술 활동들을 했다. 방대한 양을 남겨놓았다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면에는 이제 본격적으로 유대교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와의 본격적인 대결 갈등 다툼이 벌어지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환경 속에서 이 교회를 보호하고 또 크리스천들을 보호하는 그런 입장에서도 많은 책들을 펴내가지고 복음을 옹호하고 또 변증을 하고 하는 그런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 바로 이 속 사도들이다. 그리고 초대교회에 많이 번져 있었던 이단 사상 중에 영지주의 이런 주장들 이런 것들을 막아세우는 데에 속 사도들의 역할이 컸다. 반면에 굉장히 힘든 시기를 이때도 보내고 있었다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이렇게 디모데는 그런 시대 구분으로 보면 사도 시대에 속한 인물이다 그렇게 보는 거죠. 바울의 영적인 아들이고 동역자고 바울이 이제 100년 이전의 인물이기도 하고 또 복음을 직접적으로 들은 사도들과 같이 활동을 했다고 하는 그런 특징을 가지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 디모데는 바울에게 있어서 할례도 받았지만 그 바울의 영적인 영향력을 이렇게 물려받은 또 그 영향력을 상당히 입은 바울의 제자이고 믿음의 아들이고 또한 교회의 공적인 역할로 보면은 목회자 동역자의 자리매김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디모데는 어머니 쪽의 신앙 영향이 크다고 보여지는데요. 어린 시절부터 아주 전통이 있는 신앙 가풍 속에서 자라난 사람이다라고 하는 것을 볼 수가 있겠습니다. 아마 바울이 이 디모데라고 하는 사람이요. 루스드라 지역에서도 좋은 평을 받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런 사람과 동행을 한다든지 이런 사람과 동역함으로 인하여서 복음의 진도가 훨씬 더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고 하는 판단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기 전도 여행에 동참해 줄 것을 요청했고 그리고 디모데는 드디어 두욕자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뒤에 여러 신약 성경들의 내용을 살펴보면은요. 이후에 디모데는 고린도 이 고린도 지역에서 바울과 함께 복음을 전한 것으로 되어 있고요. 또 바울이 직접 파송을 해가지고 디모데를 데살로니가 지역 교회들에게 파송을 해가지고 이 데살로니가 지역의 교회들을 돌보는 일에도 통역을 했다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그리고는 추애교회의 여러 교회들의 비중으로 볼 때에 디모데는 바울의 뒤를 이어가지고 어느 교회에 요즘으로 말하면 담임 목회를 했느냐 그러면 에베소 교회에 담임 목회를 합니다. 그때야 무슨 담임목회다 뭐다 이런 표현은 없었겠지만 지금으로 보면 이제 그런 꼴이 되었다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갈라디아 베레아 이런 데까지 바울과 동행한 흔적이 사도행전에 나와 있지 그리고 이제 성경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이 디모데는 나중에 계속해서 복음 사역을 감당을 하다가 석이 요즘 편차가 좀 크기는 합니다만 81년에서 96년 사이에 그 기독교를 아주 심각하게 박해를 했던 로마 황제 중에 도미티아누스가 있는데 바로 이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에 순교한 것으로 그렇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것은 아니지만은 이 복음 사역과 관련돼 있는 성경 이외에 수많은 기록들이 있는데 그런 내용들을 추려서 보면 바울은 그때쯤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에 복음만을 전하다가 순교한 인물이다 하는 것이죠. 디모데는 이렇게 이제 외가 쪽 어머니 쪽의 영향을 받고 자라서 일단은 경건한 사람 이름 자체가 그런 것이고요. 또 기독교적인 믿음을 보더라도 아주 신실한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물론 이제 부모로부터 어떤 신앙적인 영향을 받고 또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해가지고 사회생활도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칭찬을 받을 수 있느냐 그건 아니에요. 그렇지 않겠어요 우리들이 늘 이제 이렇게 찔리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인데 교회에서나 또는 기독교 신앙으로 볼 때는 아주 본받을 만한 사람인데 사회생활 세상 속에서 나아가는 삶을 보면은 이건 차라리 안 믿었다고 하는 게 훨씬 나을 뻔했다. 그렇게 평가되는 사람들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부분들 때문에 사실은 이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상당한 장애를 얻게 되죠. 믿음과 삶이 이게 일치를 이루지 못해가지고 불일치 때문에 저게 무슨 뭐 교회 다닌다고 하지만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은 무슨 인격도 저렇게 엉망칭창이고 인간관계도 엉망칭창이고 돈 문제에 있어서도 엉망칭창이고 그래놓으면은요. 참 문제가 많은 거죠. 그런데 이 디모데라고 하는 사람은 좀 전에도 루스드라에서의 디모데의 평이라고 하는 말씀을 드렸는데 이렇게 신실한 믿음의 소유자이기도 하고 또 신앙의 전통을 잘 물려받은 사람이기도 하지만은 이가 인격적으로 아주 훌륭한 사람이라서 많은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들었던 인물이다 그렇게 보여집니다. 단 이 디모데에게 약점이라 그럴까요? 그런 것을 하나 꼽는다. 그러면은 몸이 좀 묘약해가지고 그게 좀 늘 문제가 붙었던 것 같습니다. 건강상의 문제 때문에 복음 전파하는 일을 열심히 또 그냥 줄기차게 해나가는데 항상 그것이 걸림돌이 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누구나 다 완벽한 사람은 없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성격으로 보면 조금 내성적인 그런 성향의 사람이었다라고도 추측이 되기도 합니다. 왜 그렇게 판단하느냐 하면은 사도 바울이 보낸 편지들 내용을 보면은 그런 것들이 이제 감지가 되고 있다 말씀을 드릴 수가 있겠죠. 그래서 바울은 가능하면은 좀 내성적이기도 하고 또 이게 사실 몸이 병약하면은 성품도 따라가는 것 같아요. 몸이 병약하면은 소극적인 사람이 되고 몸이 안 따라주니까 모든 어떤 일도 관계성도 조금 이렇게 움츠러들고 그럴 가능성이 참 많은데 바울이 디모데에게 언급한 그런 편지 내용들을 이렇게 쭉 살펴보면은 디모데를 계속해서 격려를 합니다. 격려를 해요. 그리고 용기를 심어주는 그런 내용들이 많아요. 격려하고 용기를 심어주고 이런 것들이 이제 디모데의 어떤 드러난 장점과 단점 이런 것들이 이제 바울에게 영향을 끼친 것이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모데에게 복음의 열정은 불타오르고 있었다 평할 수가 있겠습니다. 주님을 향한 그리스도를 향한 또 주님의 몸된 교회의 사랑에 대한 그 믿음에는 흔들림이 없었던 것이죠. 그러니까 신앙의 절개를 굽히지 않고 끝까지 지켰고 그랬기 때문에 성경에는 안 나와 있지만 디모데에 관한 기록들 여타의 기록들에 보면은 순교까지 하게 되었다 하는 것이죠. 순교하는 것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에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결단하는 인물이었다. 성경에 많은 기록들 이렇게 찾아보면 특히 이 디모데도 그렇고요. 사도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예수님도 마찬가지고요. 적어도 유대 사회 속에서 라비 선생님이라고 하는 칭호를 가지려고 한다면 무엇보다도 구약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돼요. 이건 달달달 외우기도 하고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돼. 그거는 이제 구약 성경의 풀리와도 관계가 되겠습니다마는 바로 여러 군데에서 바울과 함께 이 디모데라고 하는 사람이 초대 교회의 많은 문제들을 접근을 하고 풀어가는 데 있어서 이 구약 성경을 많이 인용하고 또 그대로 인용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구약 성경의 정신이 배태되어 있는 그런 표현, 신앙적인 언어 문장 이런 것들을 구사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가 있어요. 디모데도 이제 어머니 쪽의 영향이겠지만은 이 구약 성경에 대해 해박한 신앙관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이다라고 판단을 해볼 수가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구약의 내용에 매우 익숙해져 있는 유대 사회에서는 지도자 반열에 들어서기에 그렇게 부족함이 없는 그런 인물이 디모데였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바울이 이런 디모데를 후계자는 아니지만은 동역자로 선택을 하게 되었다. 선택하게 된 배경도 이 점은 무시 못할 내용으로 작동이 됐으리라고 보여집니다. 구약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 제가 엊그제 유대인들의 회당 예배에 관한 영상을 한참을 제가 이렇게 들여다봤는데요. 물론 이제 미국 땅에 있는 회당이기는 해요. 그러니까 영어도 사용하기도 하고 또 아주 주요한 내용들은 다 히브리어로 진행하고 뭐 하고 하는 것을 이렇게 들으면서 제가 다 알아들었게요. 못 알아들었게요. 거의 못 알아들어요. 못 알아듣는데 영어 단어는 한 몇 개인지 들을 수 있는 정도지만은 저들이 그렇게 회당 예배죠. 예배드리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이게 뭐가 가장 핵심적인 내용일까 하는 것을 한참을 들여다봤는데 저는 처음에 왜 이 재단의 이런 그러니까 이쪽 부분이죠. 이쪽에 뭔가 한쪽만 아주 화려하게 장식을 해놨어요. 그래서 저게 뭘까 우리 같으면 저기다 십자가를 걸어놓든지 그럴 터인데 나중에 보니까 그 앞에서 양쪽으로 문을 열게 돼 있는데 높이도 꽤 높아요. 뭐 하여튼 반짝반짝하는 것으로 보석을 박아놨는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화려하게 장식이 된 문을 이렇게 쫙 열고는 그 앞에서 열심히 기도도 하고 또 예식이니까 진행되는 내용들을 쭉 진행하면서 거기서 꺼내는 것을 보니까 이게 말씀 두루말이에요. 이렇게 생긴 그러니까 성인 머리부터 아마 허리 아래까지도 내려갈 만큼 길이를 가지고 있는 이렇게 뚱그렇게 생긴 말씀의 두루마리 이게 오경이죠. 토라 그걸 꺼내더니만 들고 그냥 뭐 동실덩실 춤을 추고 이걸 꺼내가지고는 회중석을 쭉 이렇게 이제 지나가지고 다시 단으로 올라오는데 회중석에 앉아 있는 유대인들이죠. 그 말씀에 손을 대고 이렇게 입을 맞추고 뭐 하나 다 그렇게 하고 이제 다시 단으로 올라와가지고는 그걸 이제 단에다 펼쳐놓고 읽어요. 근데 아마 이제 미국이니까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성들도 몇 명이 나오고 남성도 몇 명이 나오고 히브리어로 쭉 읽어내려가요. 쭉 읽어내려가는데, 이게 고 히브리어니까 옛날 히브리어니까 아무리 정통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그냥 줄줄줄 읽어 내려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겠다. 아니나 달라요. 어떤 분이 그런 어떤 부분을 이렇게 읽어내려가면은 옆에 있는 사람이 저기 수정해 주고 이 발음은 이거다라고 수준에 그럼 또 물어보고 또 그대로 읽고 쭉 읽는 장면까지 제가 보면서 이게 유대인들 유대교의 신앙관 속에 자란다라고 하는 것은 가장 핵심적인 것은 다른 예식도 있고 제사 행위도 있고 그러지만 말씀이에요. 말씀 디모데라고 하는 사람 바울도 여러분들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 아닙니까? 그러니까 이 토라를 중심으로 하는 구약 성경에 대해서는 전문가예요. 그건 예수님도 마찬가지고요. 제가 늘 언급하잖아요. 적어도 라비 정도 되려고 한다면 창세기부터 어디까지 신명기까지를 외워야 돼 외워야 돼. 저는 유대교의 라비가 될 이유도 없지만은 그럴 기억력도 저는 없고 어쨌든 그만큼 말씀 중심의 종교 이거는 우리 개신교에도 그대로 물려진 것이고 특히 종교개혁 정신은 말씀의 종교이죠. 물론 그 말씀이 어떤 말씀이고 또 그 말씀을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 그 차이는 있겠습니다만 기본적으로 보면은 디모데와 관련된 사도 바울과 관련된 그런 내용들 속에 구약 성경의 인용 부분이 다수라고 하는 거 물론 그걸 그대로 인용해가지고 이대로 하라 그게 아니고 복음의 정신을 빛내게 하기 위해서 구약성경의 내용들이 인용이 되는 거죠. 그거는 큰 차이이기는 하겠습니다마는 또 하나 바울이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이 디모데를 전령으로 보내요. 파송을 한다는 거예요. 아덴에 있던 바울이요. 디모데를 데살로니가를 보내가지고 디모데를 통해가지고 사도 바울이 할 수 있는 교회 공동체를 위한 권면 보살핌 이것들을 대신하도록 합니다. 말하자면 보내심을 받은 자죠. 사자예요. 사자 그러니까 디모데는 바울에게 전령이요. 파송된 사람이고 사자와 같은 인물이에요. 바울을 대신해서 흩어져 있는 교회들을 돌보는 일을 감당을 했다. 심지어는 고린도 교회까지도 디모데는 그런 사명을 가지고 갔다 하는 흔적이 고린도전서에 보면은 나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제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이 빌립보교회는 유럽의 첫 교회죠. 이미 소아시아 지방에는 많은 교회들이 있지만 유럽 지역에 가가지고 처음 탄생시킨 교회 그러니까 빌립보교회는 사도바울의 유럽 교회로서 첫 사랑입니다. 그리고 빌립보교회는 그런 관계성 때문에도 그랬는지 모르지만은 사도 바울의 복음 사역에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해요. 바울이 그걸 잊지를 못해요. 기도합니다. 기도합니다. 굉장히 중요한 일이잖아요. 기도와 물질이 함께 가면 더 좋은 일 아니에요. 그죠? 바울이 복음 사역을 하는데 자비량 선교사로서 천막을 만들어가면서 선교 활동을 하는데 필요한 물자가 얼마나 많았겠어요 빌립보교회가 그것을 막 많이 감당을 해줍니다. 그러니까 이게 뭐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가는 거 그거는 현실이고 사람의 연약함이기도 하지만 그건 본성이에요. 바울에게 있어서 빌립보 교회는 유럽 교회의 첫사랑 교회다. 그런데 가고 싶어도 이제 못 가요. 그런 상태에서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로 파송하려고 합니다. 디모데를 보내려고 주 예수 안에서 원한다 그런 표현을 사용을 했는데 물론 그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성경상으로는 확인이 되지 않습니다. 지금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고 말하자면은 재판 중이에요. 황제에게 제소를 했기 때문에 재판 중입니다. 자기의 재판이 어떤 결과를 맺게 될지 확실하게 알 수 없기 때문에 일단은 디모데보다도 다 다음 시간에 살펴볼 수 있는 에바브로디도를 먼저 보내고 그리고는 자기 형편이 정리가 되는 대로 이제 디모데를 보내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 해석이 가능하겠습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대한 관심이 크고 또 사랑했고 빌립보 교회에서 어떤 일이 있는지 또 어떤 복음의 진보가 있는지 교회 조직은 잘 지탱이 되고 운영이 되고 있는지 굉장히 알고 싶어 하지. 그거는 빌립보 교인들도 마찬가지예요. 사도 바울이 지금 로마 감옥에 갇혀 있다고 그러는데 재판을 받고 있는데 그분이 건강한지 생명의 위협은 아직 없는지 그리고 그 감옥에서도 여러 통의 편지를 쓰고 했는데 그런 활동들이 어떤지 매우 궁금한 거죠. 근데 아직 뭐가 정리된 게 없어 그런 상태에서 디모데를 보내고는 싶지만 디모데를 보낼 수 없는 누르이었습니다. 바울의 심정이 어땠겠습니까? 지금 감옥에 있지만은 빨리 자유로운 몸이 돼가지고 그 사랑하는 교인들이 있는 교회 빌립보 교회를 방문하고 싶어 하지 않겠습니까? 24절 오늘 마지막 절에 그런 표현이 들어 있어요. 나도 속히 가게 될 것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가고 싶은 거죠. 그런데 이제 에바 브로디도를 먼저 보낸다 하는 그런 언급이 있지만은 바울이 보내고 싶었던 인물은 디모데예요. 왜 그랬을까요? 이 빌립보 교회에 파송할 만한 인물을 찾을 수는 있겠지만은 디모데만큼 적당한 인물이 없다라는 판단을 바울이 하고 있습니다. 20절 한번 보시면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그다음에 뭐라고 그랬어요?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이 밖에 이게 디모데를 말하는 거야. 디모데만큼 너희 사정을 진실하게 생각할 사람이 없다 그런 이야기죠. 교회 생활 신앙생활 또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사람이 나를 판단하고 평가할 때 당신만한 사람이 없어요. 그 말 들으면 참 기분 좋은 거 아니에요? 당신만한 사람이 없어요. 근데 그 앞에 만약에 거짓말을 하는데 당신만한 사람이 없어요. 그렇게 붙으면 안 되는 거죠. 빌립보교회 사정을 빌립보 교회 사정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의 형편에 대해서 디모데만큼 진실되게 접근하고 말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그런 얘기죠. 우리가 살면서 이런 평을 받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미 디모데는 바울을 대신해서 이런 일을 여러 차례 수행을 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6장 11절 이하에 보면은 이 디모데가요. 빌립보 교회의 설립 과정부터를 소상하게 알고 있던 인물로 기록이 됩니다. 그러니까 아주 안성맞춤이죠. 디모데를 빌립보로 보낸다고 하는 것은 특별히 20절에 보면은 이제 진실이 생각할 자가 이 밖에 내게 없음이라라고 하는 여기 디모데를 가리켜 사용한 헬라어인데요. 이서프코스라고 하는 그런 용어를 사용을 했습니다.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 확신할 수 있는 사람 헬라어가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지만 거의 일맥상통한 개념을 가지고 있어요. 디모데를 평가하는 그 사도바울의 평가에 헬라어 그 워너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확신할 수 있는 사람 디모데다 그런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성실하기도 하고 정직하기도 하고 또 인사세도 빠르고 사람들에게도 좋은 평을 받고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복음 선교의 그 열정이 아주 뛰어난 인물 몸은 약하지만 교회를 위해서 자기 자신을 전적으로 이렇게 투신할 수 있는 사람 이게 디모데를 평가하고 있는 사도바울의 평가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게요. 그렇게 디모데만 이야기한 게 아니고요. 21절을 한번 보십시오.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그리고는 디모데 연단을 너희가 안 하니 그렇게 연결이 됩니다. 바울 주변이라고도 볼 수가 있겠고 또 빌립보 교회로 파송할 만한 사람들을 놓고 볼 때도 그렇고 디모데만한 사람이 어디 있느냐 그리고 이제 디모데가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이고 능력 있는 사람이고 또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고 복음 열정도 뜨거운 사람이고 그러면서 동시에 바울 주변에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공존해 있다라고 하는 의미를 이 21절에서 주고 있는 거죠. 이거 참 우리가 어떤 편의 사람들이 돼야 되느냐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위대한 신앙 고백을 하고 난 다음에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죽음의 길을 막아서니까 하나님의 일 사람의 일 그걸 구분을 하시잖아요. 여기 바울도 그런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 디모데를 비교를 해보니까 디모데의 위상이 더 높아지는 거죠. 물론 바울이 디모데보다 못한 사람들이라고 언급한 사람들의 이름이 나와 있지도 않고 또 그들이 한 일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는 않기 때문에 누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그냥 나와 함께 있는 자들이라고 하는 그런 표현으로 한번 생각을 해볼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어떤 요 21절을 해석을 하는 학자들에 따라서는 아마 바울과 같은 동격은 아니지만은 디모데와 비슷한 위상을 가지고 있는 바울을 돕는 동역자들이 여럿이 있었을 것인데 그들과 디모데가 이렇게 비교가 된 것으로 이야기를 해볼 수가 있겠습니다. 유는 뭐냐 그리스도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일을 구하는 사람들이다. 아주 분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일을 구한다 또는 뭐 베드로에게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구한다 그런 거죠. 명확한 판단이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그러니 바울 입장에서 볼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구하는 사람이냐 아니면 자기의 일을 구하는 사람이냐 또는 더 넓게 보면 하나님의 일을 구하는 사람이냐 사람의 일을 구하는 사람이냐 그 판단이 서면은 그 판단대로 사람을 선택하고 파송하고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보면은 디모데는 주님의 일을 구한 사람 하나님의 일을 구하는 사람 그 외에 다른 동역자들은 사람의 일을 자기 일을 구하는 사람 어떻게 자기 좋으라고 그런 쪽으로만 일을 몰아가는 사람 그런 데만 머리가 아주 팽팽팽 잘 돌아가는 사람, 또 아주 기산이 그냥 아주 그런 쪽에 밝은 사람 이런 사람에게 빌립보 교회를 맡기겠습니까? 대살림게 교회를 맡기겠습니까? 고린도교회를 맡기겠습니까? 오랫동안 신호를 했던 에베소 교회를 맡기겠습니까? 맡길 수가 없는 거죠. 이런 사람들과 디모데가 비교가 되니까 디모데는 훨씬 더 신실한 주의 종이었고 교회의 사람이었다라고 생각을 해볼 수가 있겠죠. 우리가 뭐 먼 데까지 갈 필요도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이제 교회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니까 교회 일을 중심에 놓고 생각을 해볼 때에 금방 드러나요. 금방 그것은 주님의 의를 구하는 교인인지 자기 일을 추구하고 구하는 교인인지 보이지 않겠나요? 여러분도 그런 게 보이시나요? 아니 다른 사람 이야기하지 말고 내가 내 자신을 이렇게 돌아볼 때 나는 정말 이런 경우에 주님의 일을 구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나만 생각하는 사람인지 분명하지. 겉으로 볼 때는 주님의 일을 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은 실제적으로는 자기 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물론 그것을 명확하게 구별을 해낸다고 하는 것은 실수할 수도 있고 또 사람을 잘못 평가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요. 그러니까 쉽지 않아요. 교회 일을 할 때에 내가 그동안 살아왔던 세상의 경험 사회적인 경험 경륜 이런 거에만 비추어서 판단을 하는 경우 자기 일을 구할 가능성이 많아요. 사람의 일을 구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교회 공동체의 일인데 자기 집안 일처럼 생각해가지고 판단하는 경우 자기 일을 구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경우에도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든지 또 어떤 경우에는 또 이런 교회를 어떤 일반 사회 집단처럼 생각해가지고 어떤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그런 도구로 또는 교인이나 교회를 생각한다든지 이게 다 자기 일을 구하는 거예요. 쉽잖아요. 그렇죠 그 여러분 절대로 교회를 이용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주님을 내 뜻에 합당하게 이용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굉장히 위험한 일입니다. 굉장히 위험한 일이에요. 그런 경우에는 내가 그렇게 신앙생활을 수십 년 했다가 마지막 때 주님 앞에 설 터인데 자네 교회를 얼마나 위했는가 주님의 일을 얼마나 참 소중히 여기고 그렇게 살았는가 물어보시면 그건 뭐 우리가 대답 못해도 주님께서는 다 기록해 놓지 않았겠어요 신앙의 본질을 오해하기 때문에 또 교회가 뭐냐 하는 교회의 본질을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올 수 있는 현상들입니다. 이런 식으로 신앙생활을 하면 아무리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도요 여전히 나 자신에 대한 관심 밖으로는 이 발걸음을 한 발자국도 옮기지 못하고 마는 경우가 있을 수가 있겠습니다. 이게 오늘 바울이 디모데를 이제 평가라기보다도 워낙 신실한 사람이니까 디모데 이야기를 하면서 동시에 통역자 그룹이라고 할까 그렇지 못한 사람들 그 기준을 분명하게 세워놓은 거예요. 주님의 일을 구하는지 자기의 일을 구하는지 하나님의 일을 구하는지 아니면 사람의 일을 구하고 있는지 우리가 늘 그거는 그냥 늘 생각해야 돼요. 더 생각해야 되고 또 생각하고 그래서 아주 중요한 말을 하기 전에는 항상 한 번 더 생각하고 말을 하고 또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도 한 번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기고 기준은 뭐예요? 내가 이 말을 이 행동을 주님의 일을 생각하면서 하고 하는 건지 아니면은 내 생각을 하고 하는 건지 가장 중요한 기준을 사도 바울이 내놓았다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의 교회들이 참 열심히 있는 교회들이 참 많죠. 대부분이 열심히 있는데 한국의 교회들이 보이고 있는 열심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열심인지 아니면 인간들을 드러내고 빛내기 위한 그런 열심인지 비슷한 이야기예요. 비슷한 이야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일에 열심을 내십시오. 사람의 일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일에 가로막지 마십시오. 사람의 일은 막아야 되지만 하나님의 일은 가로막아선 안 되는 거죠. 오늘 나온 여러분들이 주님의 일, 예수님의 일을 구하는 데 최선을 다하시는 거룩한 성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마침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바울의 영적인 아들이며 동역자인 디모데에 관한 말씀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가 병약하기는 했지만은 그러나 복음에 대한 열정 그리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참 칭찬을 많이 받은 사람, 그리고 신실한 사람, 믿을 만한 사람 그게 디모데라고 평가가 되어집니다. 또 한편으로 보면은 교회 일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에 주님의 일 예수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고 자기 자신의 일을 구한다든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든지 그런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목회자나 성도들이나 모두 다가 예수님의 일, 교회 일, 하나님의 일을 가장 중심에 놓고 판단하고 기도하고 또 행실로 옮기기에 부족함이 없는 성숙한 신앙인들, 이 자리에 함께한 모든 성도들이 될 수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첨부 파일
158 2025년 2월 19일 수요예배 설교 이민일 2025-02-20 10
157 2025년 2월 12일 수요예배 설교 이민일 2025-02-13 10
156 2025년 2월 5일 수요예배 설교 이민일 2025-02-06 12
155 2025년 1월 1일 수요예배 설교 이민일 2025-01-02 26
154 2024년 12월 18일 수요예배 설교 이민일 2024-12-19 21
153 2024년 12월 11일 수요예배 설교 이민일 2024-12-12 21
152 2024년 11월 27일 수요예배 설교 이민일 2024-11-28 19
151 2024년 11월 13일 수요예배 설교 1 이민일 2024-11-14 26
150 2024년 11월 6일 수요예배 설교 1 이민일 2024-11-08 26
149 2024년 10월 30일 수요예배 설교 이민일 2024-10-31 23
148 2024년 10월 23일 수요예배 설교 이민일 2024-10-25 24
147 2024년 10월 9일 수요예배 설교 이민일 2024-10-10 27
146 2024년 10월 2일 수요예배 설교 이민일 2024-10-04 26
145 2024년 9월 25일 수요예배 설교 이민일 2024-09-26 24
144 2024년 9월 18일 수요예배 설교 이민일 2024-09-19 22
1 2 3 4 5 6 7 8 9 10 ...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