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사랑을 나누는 교회

청주제일교회 신앙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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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제일교회는 1904년 청주읍교회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였다.
민노아 선교사와 기도와 헌신으로 당시 유망한 청년들을 얻었고
이들을 중심으로 1904년 남문밖에 커다란 방이 여섯 개 있는 초가집 한 채를 마련하여
예배를 드린 것이 교회의 시초가 되었으며 청년들을 중심으로 출발한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

bullet_1.png교회 설립자와 초대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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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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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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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예배당 건축 공사를 추진하여 1941년에 준공하여
아름다운 교회당을 완성하였고 해방 후 증축공사를 하여
1951년 완공하여 지금의 교회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공사의 과정에서 일제의 간섭과
6.25 전쟁이라는 전쟁의 혼란 속에서 탄생한 교회이다.

bullet_1.png천주교 신자의 순교 터 위에 세워진 개신교회 ‘청주제일교회’

현재의 청주제일교회 자리는 조선시대 청주 영장(英將)의 관아, 곧 관사와 옥사가 있던 것으로
이 곳에서 1800년의 신유박해 이래 1866년 병인박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옥에 갇혔다가 처형된 천주교의 순교성지이다.
청주제일교회는 천주교의 순교자들의 피가 그 씨앗이 되어 자라고 피어난 교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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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llet_1.png청주진영터 비

bullet_1.png충북의 어머니 교회 ‘청주제일교회’

먼저 세워진 장로교회가 있지만 청주제일교회를 어머니 교회로 부르는 까닭은 선교사들의 활동 중심이 청주제일교회였다는 점,
충북 최초의 조직교회로 여러 교회들을 지도했다는 점.
청주제일교회에서 많은 교회들이 개척되어 나갔기 때문이다.
청주제일교회는 충북지방선교의 선도적, 중심적, 중추적 역할을 한 충북의 어머니 교회로서의 위상을 가지고 있는 교회이다.

bullet_1.png충북 교육의 중심거점 ‘청주제일교회’

청남학교를 운영하였고 1909년 청신여학교를 별도로 운영하여 충북 최초로 여성교육을 실시하였다.
또한 세광 중·고등학교, 상당유치원, 청신고등공민학교, 남녀성경학원 등을 운영하고 YMCA, YWCA 등이 청주제일교회에서 출발하는 등
교육적 전통과 기독교 시민운동을 중시하여 온 충북 교육의 중심거점의 역할을 감당해온 교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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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llet_1.png청남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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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llet_1.png세광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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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llet_1.png상당유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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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llet_1.png청신고등공민학교

bullet_1.png애국, 애족의 전통을 지니고 있는 ‘청주제일교회’

청주제일교회는 기독교 정신에 입각하여 일제 강점기의 민족운동, 항일운동을 주도하였으며,
해방 후 혼란기에 담임목사였던 구연직 목사는 자유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며 사회 안정에 나섰으며
군사독재시절, 청주제일교회 청년, 대학생들이 주축이 된 민주화 운동은 청주 지역 민주화 운동의 산실이요, 요람이었다.
또한 교회는 집회와 시위를 위한 장소를 제공하는 등 애국적, 민족적 전통을 지니고 있는 교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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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llet_1.png청주제일교회의 대예배실 내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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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제일교회 정면.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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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제일교회 정면.png

청주제일교회
대예배실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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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예배당 건축 공사를 추진하여 1941년에 준공하여
아름다운 교회당을 완성하였고 해방 후 증축공사를 하여
1951년 완공하여 지금의 교회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공사의 과정에서 일제의 간섭과
6.25 전쟁이라는 전쟁의 혼란 속에서 탄생한 교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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