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와 회복으로 자라는 교회

수요예배

2026년 9월 23일 수요예배 설교-히브리서(47)
2026-09-26 15:46:51
청주제일
조회수   4

*말씀봉독 : 히브리서 12장 1절-29절

*말씀선포 : 시내산과 시온산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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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회장로 2026-09-27 01:45:26
​[시온산의 은혜를 구하는 묵상 기도문]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말씀을 통해 우리의 영혼을 깨워주시고, 우리가 서 있는 신앙의 자리를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는 때로 세상의 고단함과 마주할 때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힘없이 늘어뜨린 채 주저앉아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약하고 허물어진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게 하시고, 주님의 손을 의지하여 다시 일어나 건강하고 담대한 신앙의 길을 걷게 하여 주옵소서. ​에서와 같이 순간의 육신적인 만족과 눈앞의 익숙함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구원의 유산과 영적인 직분을 소홀히 여기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늘 깨어 있어 거룩한 경각심을 가지게 하시고, 세상의 그 어떤 가치보다 주님의 은혜를 가장 귀하게 여기는 순전한 마음을 주옵소서. ​두려움과 율법의 엄위함이 가득했던 시내산의 그늘에서 벗어나,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 은혜의 시온산으로 우리를 불러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아벨의 피처럼 원한을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단번에 용서하시고 아무 조건 없이 살리신 예수님의 보혈이 지금도 우리 삶에 흐르고 있음을 믿습니다. ​세상의 온갖 소란스러운 소리와 복잡한 염려 속에서 우리의 영혼이 흔들리지 않게 하시고, 오직 인생의 모든 주파수를 주님께만 온전히 맞추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매일의 삶 속에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이루어 가며, 내 이웃과 생명을 나누는 참된 평화의 도구로 쓰임 받게 하옵소서. ​우리 삶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성회장로 2026-09-27 01:46:26
주요 내용 요약: 그리스도인의 삶의 태도 (3:11-14:32): 그리스도인은 약한 곳에 머물지 말고 힘을 내어 건강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는 것이 중요하며, 이는 단순한 평화를 넘어 이웃과 생명을 나누는 관계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에서의 사례를 통해 하나님의 축복과 장자권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시내산과 시온산의 대비 (14:46-42:22): 시내산 (18절-21절): 구약 시대 율법과 관련이 있으며, 하나님 임재의 거룩한 두려움(불, 흑암, 폭풍 등)이 강조되는 장소입니다. 시온산 (22절-24절): 오늘날 성도들이 이른 곳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이자 하늘의 예루살렘을 상징합니다. 결론 (42:43-46:00): 우리는 구약의 율법적인 시내산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야 합니다. 인생의 주파수를 항상 주님께 맞추고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생명의 삶임을 강조하며 설교를 마무리합니다.
김성회장로 2026-09-27 01:48:43
설교 원문 전문입니다. ​오늘 하나님 말씀은 히브리서 12장 14절부터 29절까지 말씀 ​이제 히브리서 12장을 가지고 오늘 세 번째 시간을 진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수요일에 한 번 더 다루면 히브리서 12장 말씀도 네 번 다루고 마치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일단 지난 시간에 우리들이 12절부터 17절까지 말씀을 중점적으로 생각을 해 보았기 때문에 그 내용들을 잠시 점검을 해 보고 그다음 이제 세 번째 단락으로 넘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12절부터 보면 기독교인들의 기독교인다운 그런 삶의 태도들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을 해 주고 있죠.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너무 약한 곳에 머물러 있지 말고 힘을 내고 반듯하게 신앙생활을 이런 식으로 좀 해 나가야 된다 하는 일종의 권면의 말씀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12절에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바른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하셨습니다. 약한 데 머물러 있거나 주저앉아 있거나 멈춰 있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참다운 삶의 태도는 아니라는 개념으로 읽어 볼 수 있겠습니다. 고침을 받고 신앙적으로 건강하게 살아야 되지 않겠느냐 하는 해석도 가능하겠습니다. ​이런 권면을 주시면서 14절에 두 가지 내용을 제시했는데,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화평과 거룩함을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화평과 거룩함이라는 두 용어가 선택되어 제시되었습니다. 실제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야 될 것이고 또 거룩함을 따라야 한다는 요청입니다. 물론 화평과 거룩함의 삶이 말처럼 쉬운 삶이 아니기에 참 심오한 뜻을 가지고 있어서 쉽지 않다고 진작에 멈칫할 수도 있겠지만, 특별히 화평의 삶을 이야기할 때 이웃들과 사이좋게 잘 지내는 것을 넘어서는 개념입니다. 화평은 히브리어로 샬롬, 희랍어로는 에이레네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단순히 싸우지 않고 잘 지내는 정도는 세상 사람들도 공존을 외치며 살아갈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적인 개념으로 화평을 바라볼 때, 이웃들과 함께 생명을 같이 나눌 수 있는 관계까지 형성되어야 한다는 아주 중요한 의미가 덧붙여집니다. 생명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관계로 들어가는 것이 화평을 누린다는 말씀의 근본적인 의미입니다. 만약 이웃과 친하게 지내면서도 성경이 싫어하는 악을 행한다면 그것은 화평도 아니고 생명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위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우리들이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할지 생각해 보면, 나 혼자 살아갈 수 없고 모든 피조 세계와 함께 평화로운 공존을 이루어내는 삶이 곧 생명을 나누는 삶입니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창조 질서의 보존에도 해당할 수 있고 수많은 내용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종교가 서로 주장하는 바가 다르다 할지라도 우리 인간의 생명의 삶을 더 풍성하게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내용이 있다면, 이 땅에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하고 노동자들이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등 생명과 관련된 수많은 삶을 지향하는 것이 넓게 보면 생명을 나누는 삶입니다. 이웃과 생명을 같이 나눌 수 있는 관계까지 나아가야 성경 본래의 뜻에 가까워집니다. ​또 하나는 거룩함을 따르라는 용어인데, 거룩하다는 개념은 쉽게 말해 구별되게 산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어 구별된 삶을 산다는 것은 나의 위상이나 유별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인생 방향이 비그리스도인들과 다르다는 차원입니다. 삶의 방향성을 다르게 갖는 것이 구별된 것이며, 구체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우리의 초점을 맞추고 방향을 돌리는 것이 거룩한 삶의 특징입니다. ​그러면서 12장에 구약의 인물인 야곱의 형 에서를 예로 들었습니다. 자기가 지키고 유지해야 할 장자권과 축복권을 팥죽 한 그릇에 야곱에게 팔아넘기며 소홀히 여겼던 인물입니다. 주어진 구원의 좋은 기회와 구별된 삶의 방향성을 소홀히 생각하는 것이 에서와 같은 태도입니다. 방향성을 제대로 잡지 못하면 소중한 것을 놓치게 되고, 나중에 회복하려 해도 불가능해진다는 것을 히브리서 12장은 지적합니다. ​오늘 세 번째 단락인 18절부터 24절로 넘어가 봅니다. 이 단락은 우리가 늘 사용하는 용어가 아니기에 뚜렷하게 잡히지 않는 불분명한 내용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시내산과 시온산을 뚜렷하게 대비시켜 주고 있습니다. 시내산에서 있었던 일들과, 실제 존재하는 산은 아니지만 상징적인 시온산과 관련된 내용이 대조됩니다. ​시내산은 모세, 율법, 출애굽 시절과 관련된 매우 유명한 산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다 보면 시내산과 호렙산의 관계에 대해 혼돈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모세가 80세에 불타는 떨기나무 속에서 하나님을 체험한 곳이 호렙산이고, 출애굽 후 가나안 땅에 들어갈 백성들에게 율법과 십계명을 주신 곳은 시내산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역사적·지리적으로 완전히 다른 장소인지, 아니면 같은 산이나 산맥에 속한 이름인지 질문을 갖기도 합니다. 전통적인 견해로는 우암산이나 태백산맥처럼 큰 산줄기나 산맥을 시내 또는 호렙으로 부르고 그중 하나의 봉우리를 가리키거나, 서로 붙어 있는 산맥과 봉우리 관계로 해석해도 큰 무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용도상의 차이가 있습니다. 시내산은 십계명과 율법을 수여받은 공적인 장소로 강조되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에 자주 등장합니다. 반면 호렙산은 '건조하고 황폐한'이라는 뜻을 가지며 하나님의 산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개인적인 신앙 체험의 장소로 검명됩니다. 모세가 떨기나무나 반석에서 물을 낸 경험, 엘리야가 아합과 이세벨을 피해 도망쳐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은 장소가 모두 호렙산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호렙산이 개인적 체험 중심이라면, 시내산은 공동체적 체험이 강조될 때 주로 사용됩니다. 학술적인 문서설 관점에서도 하나님을 여호와로 부르는 문건(J, P문서)에서는 시내산을, 엘리야나 엘로힘 문건(E문서)에서는 호렙산 명칭을 주로 사용하는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시내산과 시온산을 대조합니다. 시내산에 임했던 하나님의 임재 특징은 18절부터 일곱 가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불, 산, 침침함, 흑암, 폭풍, 나팔 소리, 말소리 등입니다. 이 묘사를 함축해 보면 하나님을 체험한다는 것은 두려운 체험, 즉 거룩한 두려움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신앙의 출발은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두려움에서 오며, 시내산은 바로 이 거룩한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체험했던 산입니다. 아브라함이나 구약의 수많은 인물들도 하나님의 거룩한 두려움(누미노제) 속에서 음성을 들었습니다. 한자로 표현하면 사람의 말로 다 설명하기 힘들 만큼 신비로운 '현묘'의 현상입니다. 어둡고 침침하면서도 아주 신비롭고 미묘한 하나님 체험의 성격을 일곱 가지 현상으로 드러낸 것입니다. ​이러한 신비로움은 일상 속에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컨대 땅속에서 추출한 석유 원유 하나가 변화를 일으켜 비닐, 플라스틱, 스티로폼 등 수만 가지 전혀 다른 모양의 공산품이 되는 것을 보면 신비로움을 느낍니다. 하나님의 체험 역시 일상에서 느끼지 못하다가 깊은 신비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나라는 존재를 돌아보아도 현묘함을 느끼게 되는데,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경험한 하나님 체험이 바로 그러한 차원이었습니다. ​반면 22절부터는 또 다른 산인 시온산이 등장합니다. 구약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거룩한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만났다면,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시온산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찬송가나 복음성가에도 시온산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구약의 시내산 임재 체험은 율법이 온전치 못했던 것처럼 완전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도달한 시온산은 전혀 다릅니다. ​22절을 보면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라고 되어 있습니다. 공동번역 성경으로 보면 "그러나 여러분이 와 있는 곳은 시온산이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이며 하나님의 예루살렘입니다"라고 번역되어 있어서 의미가 더 명확합니다. 시온산은 상징적인 곳으로서 예루살렘 성전과 하나님의 도성을 가리킵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는 길을 시온성을 향해 간다고 표현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시온산, 곧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이자 예루살렘을 영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그곳에는 천만 천사,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 그리고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님과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속죄의 피가 있습니다. 이것이 시내산과 시온산의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옛 언약인 율법의 시내산이 아니라, 새로운 계약의 중재자이신 예수님이 계시고 아벨의 피보다 더 큰 능력을 발휘하는 속죄의 보혈이 흐르는 곳이 바로 시온산입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내용은 매우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계약 속으로 들어가는 확연한 느낌을 줍니다. 익숙한 구약의 시내산과 율법의 개념을 뛰어넘어, 예수님이 중심이 되시는 시온산의 은혜로 안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22절부터 24절까지의 내용만 가지고도 책을 몇 권 쓸 수 있을 만큼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시내산이나 호렙산에 얽매인 자들이 아니며, 새 계약의 중재자이신 예수님과 그분의 속죄 피를 모시고 살아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사는 그 자리가 바로 시온산입니다. 히브리서의 핵심은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삶과 영혼의 주파수가 항상 주님께 온전히 맞추어져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흔들리거나 멈추지 말고 영혼의 주파수를 주님께 고정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라고, 명절 연휴 기간에도 주님의 은혜가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자비하신 하나님, 오늘 히브리서 12장 말씀 세 번째 시간을 통해 시내산, 호렙산, 그리고 시온산의 개념을 살펴보았습니다. 구약의 율법을 받았던 시내산과 달리 시온산은 새로운 언약의 중재자이신 예수님께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깨닫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인생의 주파수를 주님께 맞추고 살아가는 것이 생명의 삶임을 알게 하셨으니, 모든 주의 자녀들에게 하늘의 은총과 축복을 더하여 주옵소서. 명절 기간 동안에도 건강하게 지켜 주시고 믿음의 삶이 더욱 충만해지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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