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와 회복으로 자라는 교회

수요예배

2026년 9월 30일 수요예배 설교-히브리서(48)
2026-10-01 10:24:34
청주제일
조회수   15

*말씀봉독 : 히브리서 12장 1절-29절

*말씀선포 : 시내산과 시온산④

댓글

김성회장로 2026-10-04 10:51:17
​[묵상기도문]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소유한 삶 ​거룩하시고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주님의 말씀 앞에 제 마음을 겸손히 비추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구약의 백성들이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먼발치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두려운 시내산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부활의 은혜를 통해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은혜의 시온산으로 저희를 불러주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참으로 무섭게 진동하고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환경이 변하며, 눈에 보이는 세상의 가치와 사람의 계획은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이 흔들리고 무너집니다. 연약한 저의 마음과 생각 역시 조그만 시련과 환경의 변화에도 쉽게 갈대처럼 흔들리고 상처받았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세상의 모든 것은 흔들리고 사라질지라도,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주님의 나라와 복음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반석임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아무런 자격 없는 저를 위해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보혈의 피로 말미암아, 제가 이미 결코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음을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사랑의 주님, 변함없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게 하옵소서. 세상이 거세게 진동할 때 내 마음이 불안에 떨지 않게 하시고, 변치 않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위에 내 영혼의 닻을 깊이 내리게 하옵소서. ​소멸하는 불이신 하나님 앞에 거룩한 경건함과 겸손한 두려움을 갖추게 하시고, 내게 허락하신 영원한 나라를 소유한 백답게 감사와 찬송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섬기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어떠한 순간에도 주님의 손을 놓지 않고, 임마누엘의 은혜 안에서 늘 기뻐하며 신앙의 굳건한 여정을 이어가게 하옵소서. ​우리를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나라로 인도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성회장로 2026-10-04 10:51:45
히브리서 12장 14절에서 29절 말씀을 바탕으로, 구약의 '시내산'과 신약 시대 그리스도인이 경험하는 '시온산'의 차이를 비교한 수요예배 내용입니다. 주요 핵심 내용: 시내산과 시온산의 대비 (03:52 - 04:38): 시내산은 모세가 십계명을 받을 당시 하나님의 엄격한 임재와 두려움을 상징하는 산입니다. 반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나아가는 시온산은 하나님의 도성이자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나라를 의미합니다. 진동하는 세상과 변치 않는 나라 (12:43 - 13:35): 히브리서에 등장하는 '진동한다'는 표현을 인용하며, 지구가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는 물리적 현상(판 구조론 등 언급)에 비유하여 설명합니다. 세상의 모든 기초는 흔들리고 변하지만,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시온산의 복음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다고 강조합니다 (35:46 - 36:13). 신앙적 적용 (36:17 - 37:22): 우리 자신의 마음과 생각은 갈대처럼 흔들리기 쉽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믿음을 통해 우리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음을 기억하고, 경건함으로 하나님을 섬기라고 권면합니다. 결론: 변화무상한 세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그리스도인으로서,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굳건히 고정된 신앙의 여정을 이어갈 것을 강조하며 마무리합니다.
김성회장로 2026-10-04 10:52:33
(설교 전문) 하나님 말씀 보겠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4절부터 29절까지 말씀 교독하겠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4절로 29절입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너희는 만질 수 있고 불이 붙는 산과 침침함과 흑암과 폭풍과 짐승이라도 그 산에 들어가면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령을 그들이 견디지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그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한번 땅만이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아멘. 아멘. 오늘은 이제 히브리서 12장을 수요예배 시간에 마지막으로 살펴보는 시간을 삼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집중적으로 살필 내용은 실제적으로는 25절부터 마지막 29절까지이지만은, 이제 지난 시간을 생각하면서 이제 14절부터 우리가 교독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느냐 할 때에 구약 시대에 모세를 통해서 십계명 말씀을 받은 하나님이 엄하게 임재를 하셨던 그런 시내산과 비교를 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부활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시온산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그게 우리 14절 이하를 읽으면서 확인할 수 있는 그런 내용입니다. 그래서 시내산과 시온산이 비교가 되는 두 산들의 어떤 위상 또는 역할, 또 이스라엘 백성들 또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두 산의 의미를 어떻게 찾을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을 해 보게 되는 것이죠. 물론 시내산은 출애굽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던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산입니다. 지금의 사우디아라비아 쪽에 있는 산이 시내산이다 하는 그런 주장도 있기도 하고, 또 시나이반도 보통 성지순례를 가면 오르게 되는 그 시내산 그곳이 시내산이다 하는 주장이 있기도 하지만, 제가 볼 때는 이쪽이든 저쪽이든 간에 이 시내산이라고 하는 이 산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직접적으로 체험을 했던 그런 산이다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근데 이제 히브리서의 기록은 산으로 따지면은 그 의미상으로 보면 시내산은 완전한 게 아니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시온산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체험하는 데까지 이미 들어와 있고 그런 체험이 있어야 된다라고 하는 것을 말씀을 합니다. 지난 시간도 그 시온산에 대해서 잠깐 언급을 했지만 시온산은 실제 존재하는 산은 아니죠. 보통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그곳으로 갈 때에 시온산으로 간다, 그냥 가는 것도 아니고 성전산 자체가 예루살렘 도시 자체도 여리고에서 올라가려면 한참을 올라가야 되는 높은 지대인데 그 높은 지대인 예루살렘에서도 성전이 있는 성전산은 더 높은 곳에 있단 말이죠.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던 곳 그곳, 그것이 이제 성전이 세워진 곳이다라고 그렇게들 이제 우리가 신앙 고백하지요. 모리아산. 그래서 유대인들은 성전이 있는 곳으로 갈 때에 그냥 간다 표현하지 아니하고 올라간다 그런 표현을 사용하는 거예요. 실제적으로 올라가기도 하지만 그런 개념보다도 아 이제 다른 차원에 올라간다라고 하는 개념을 사용하는데, 바로 예루살렘 자체가 또 성전이 있는 그 자체가 시온이고 시온산이다 하는 이제 그런 신앙 고백을 하고 있다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 제가 그 22절 내용을 공동번역 성경을 읽어 보면 좀 더 명확해진다라고 해서 읽어 드렸죠. 그러나 여러분이 와 있는 곳은 시온산이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이며 하나님의 예루살렘입니다. 그러니까 그 성전 중심의 삶을 살았던 유대인들을 생각해 보면, 아 그러면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 중심의 그 사고 체계가 신앙 체계가 아직도 여기에 적용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잘못 읽으면은 그런 착각에 빠질 수도 있겠지만은 그런 내용은 결코 아니죠. 여러분이 와 있는 것은 여러분이 이미 와 있는 것은 시온산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이며 또 하나님의 예루살렘입니다 하는 그 공동번역 성경이 훨씬 더 우리가 22절 말씀을 받아들이는데 좀 쉬운 표현을 사용을 했다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시온산이라고 하는 개념 자체가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실제하는 무슨 우암산이나 백두산이나 소백산이나 이런 산 개념이 아니고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이제 시온산이다 하는 말씀이죠. 하나님이 계신 곳, 하나님의 도성, 그것도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 그렇게 이제 표현을 해 주고 있는 것이죠. 바로 거기에 함께 있는 것이 우리 기독교 신앙이고 영성이다라고 하는 것을 받아들입니다. 이것을 막연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그렇게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이제 중요하겠다라고 말씀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이제 22절부터 23절 또 24절 내용들을 보면 구약의 내용도 포함이 되고, 또 천만 천사라고 하는 개념도 들어 있고, 장자들의 모임이라고 하는 그런 표현도 들어 있고, 또 의인의 영들, 이제 해석이 난무할 수밖에 없는 그런 표현들이 들어 있는데, 하여튼 이 하나님이 계시는 곳 우리가 이미 그곳에 와 있다라고 하는 이 개념만으로 이 말씀의 의미는 충만히 우리에게 전달이 되어진다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더군다나 새로운 계약의 중보자이신 예수님이 계시다, 이 아벨의 피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속죄의 피를 흘리신 예수님이 계신 곳 그게 바로 시온산이다 하나님의 도성이다라고 하는 아주 놀라운 표현들을 이렇게 찾아볼 수가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같은 발음이 들어가긴 하지만 시내산과 시온산의 개념은 이렇게 다르다라고 하는 것을 확인을 해 볼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 22절부터 24절 요 내용만을 가지고도 엄청난 이야기가 나올 수 있고, 뭐 설교도 말할 것도 없고 책으로 만들자고 하면은 수십 권의 책 분량이 나올 만큼의 그런 옛 이야기와 함께 새로운 이야기들 복음의 이야기들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이게 이제 지난 시간까지 살펴본 내용들이 되겠습니다. 오늘 이제 25절부터 마지막 29절까지 이제 마지막 단락의 내용이 됩니다. 저는 이 25절부터 29절까지의 내용의 핵심적인 표현이라고 할까요, 그것을 찾아낸다고 한다면 진동한다라고 하는 표현입니다. 진동한다. 진동한다라고 하는 게 어떤 개념인지 여러분들이 잘 아시지 않겠습니까? 진동한다, 이게 흔들린다. 근데 이 진동은 그냥 가볍게 흔들리는 정도가 아니라 내 존재 전체가 흔들리는 그런 개념으로서의 진동이라고 볼 수가 있겠는데, 25절 이하에 보면 이 진동한다라고 하는 개념이 여러 차례 언급이 되어 있다 하는 것을 찾아볼 수가 있겠습니다. 인간 존재 자체라고 표현을 했는데 하여튼 그 기본적인 토대마저도 흔들리고 뿌리채 흔들려 버리는 그런 개념으로서의 이제 흔들림, 진동이라는 개념으로 이 표현들을 생각을 해 볼 수가 있겠습니다. 사실 이 25절 이하에 진동한다라고 하는 개념,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그런 표현이기는 한데요, 이게 뿌리로부터의 흔들림 존재 자체의 흔들림이라고 하는 개념으로 접근을 해 보면, 지금 이 히브리서를 기록하신 분이 예수님의 제자일 수도 있겠고 아닐 수도 있겠고, 초대교회 아주 유능한 그런 신학자일 수도 있겠고요, 또는 속사도라고 불리는 예수님의 12 제자들로부터 복음적인 가르침을 받은 제 2대 3대 사도라고 할 수 있는 속사도일 수도 있겠고요, 또는 누군지 전혀 알 수 없는 익명자의 그 복음의 글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는데요. 제가 왜 이 이야기를 드리느냐 하면 이게 2천 년 전의 말씀 아닙니까? 현대 물리학에 대한 지식 이런 것이 전혀 없을 때에 여기 25절 이하에 보면 진동한다라고 하는 그런 표현을 사용을 했습니다. 좀 전에 표현한 것처럼 그냥 우리의 몸이 흔들릴 정도 그런 개념으로서 이 진동한다라는 표현을 쓴 게 아니고, 우리 인류로 말하면 인류 전체의 근간이 흔들리는, 또 하나님의 창조 세계로 말하면은 창조 세계 기반이 흔들려 버리는 뭐 그런 개념으로서의 진동이기 때문에, 이런 흔들림 진동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현대의 어떤 학문적인 분야라 그런다면은 현대 물리학 분야죠. 물리학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내용들입니다. 근데 2천 년 전에 무슨 현대 물리학을 공부하신 분들도 아니고 그런 지식을 접한 것도 아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중요한 표현을 여기서 사용을 하고 있어서 오늘 그 점에 좀 초점을 맞춰 가지고 마지막 단락 내용을 좀 살펴보려고 합니다. 자, 현대 물리학적인 개념으로서의 어떤 기반의 흔들림 존재 자체의 흔들림 이런 개념을 알 수도 없었던 그런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현대 물리학이 풀어 주고 있는 것들을 알고나 있는 것처럼 그런 통찰력을 가지고 이런 표현을 사용한 것입니다. 그런 통찰력을 저는 뭐 굳이 제 신앙적인 표현을 해서 표현을 한다면 영적인 통찰력이다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영적인 통찰력. 세계가 진동을 하고 창조 세계가 진동을 하고 그거는 곧 우주 전체가 진동을 한다 하는 개념으로도 이제 생각을 해 볼 수가 있겠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지금 발을 딛고 살고 있는 우리 인식의 세계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이 지구 위에서의 삶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지금 이렇게 가만히 서 있지 않습니까? 가만히 서 있는 게 사실은 그게 이상한 거죠. 왜냐하면은 지구는 스스로 막 자전을 막 돌고 있거든요. 늘 가끔 이야기하는 거지만 스스로 돌고 있으면서 그 도는 그 자체의 힘을 가지고 또 태양 주위를 공전을 하고 있단 말이죠. 자전을 하고 공전을 하고 그런데도 우리는 그런 느낌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지구 중심에서 우리를 붙잡고 있는 중력의 힘에 의해서 이렇게 저도 흔들리지 않고 여러분들도 흔들리지 않고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은, 실제적으로는 지구 속은 그냥 막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렇죠? 그리고 땅이 계속 움직이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나 예를 들면은 이제 판운동이라고 하는 그런 개념이 있는데요. 지구가 완벽하게 둥근 원은 아니지만 럭비공처럼 타원형으로 그렇게 생겼지 않습니까? 약간 기울어져 가지고 스스로 자전해 가면서 이제 태양 주위를 공전을 하고 있는데, 이 지구 자체만 보더라도 판운동이라고 하는 개념을 보면 지구의 껍데기라고 할까요, 계속 움직이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눈으로 볼 때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 발을 딛고 있는 지구 속에서 계속 뭔가가 움직이고 있다, 그 속으로 들어가면 더 말할 것도 없고요. 그래서 바다가 산이 되기도 하고 또 산이 바다가 되기도 하고, 천천히 움직이든 빠르게 움직이든 이런 현상들은 계속 벌어지고 있다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하자면 이 판운동이라고 하는 전문적인 용어이기는 하겠습니다만은, 이 지구의 겉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단단한 암석으로 이루어진 판이 지구 겉면을 여러 판들이 둘러싸고 있다 이제 그런 개념입니다. 작게 보면 일곱 개 판이 있다 그렇게 보기도 하고 하나 더 추가하면 여덟 개의 판이 있기도 하다 그렇게 부르기도 합니다. 아프리카 판이 있고, 남극 판도 있고, 또 우리나라는 조금 비껴 나가 있지만은 일본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태평양 판, 이게 판 중에서 제일 큰 판이라고 볼 수가 있겠는데, 이게 우리 인간의 뇌를 껍데기를 싹 벗겨 보면 하나의 뼈로 이루어진 게 아니고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잖아요. 아시죠 그거는? 여러분들의 머리가 그냥 하나의 뼈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다는 거죠. 마치 그것처럼 지구의 껍데기도 일곱 개나 여덟 개의 커다란 암석들, 서로 움직이고 있는 그런 암석의 판으로 덮여 있다, 이게 이제 판 이론이라고 하는 그런 얘기입니다. 태평양 판이 남아메리카 북아메리카 거쳐 가지고 이쪽으로 꺾어 내려오면서 일본 거쳐서 필리핀 이렇게 호주까지 영향을 끼치는데, 저 태평양 판 여기를 흔히 불의 고리라 그렇게 부르기도 하죠. 제일 큰 판인데 불의 고리, 그래서 지진이 제일 많이 일어나는 곳, 요 둘레로 해 가지고요. 바다 한가운데가 아니라 하여튼 그 판의 가장자리를 통해 가지고 지진이 제일 많이 일어나는 곳, 또 화산 활동이 제일 활발한 곳, 왜냐하면은 태평양 판하고 거기에 있는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판하고 또 부딪치죠. 저 위에 북아메리카 판 남아메리카 판하고도 부딪히죠. 이게 부딪히면서 그 중간에서 그 사이사이에서 지진이 일어나고 화산 활동이 일어나는데, 여기 불의 고리라 불리는 이유입니다. 올해 우리나라 태풍이 그렇게 심하게 오지는 않았잖아요. 일본이 참 우리나라 밑에서 이렇게 가로막아 준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태풍이 몇 개가 사실은 우리나라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쳐야 되는 건데, 오다가 일본 섬나라에 딱 걸려 가지고 일본 쪽으로 확 꺾어 버리고 꺾어 버리고 그러기도 하지 않습니까? 바로 그게 태평양 판이라고 불리는 판인데, 바로 이런 것 때문에 옛날에 아주 옛날에 이 판들끼리 팍 부딪혀 가지고 확 솟아오르면은 히말라야 산맥도 생기고 안데스 산맥도 생기고 이렇게 되는 거죠. 그리고 또 높은 산이었던 곳이 바다 속으로 들어가 버리기도 하고, 그러니까 히말라야 핑크 솔트라고 하는 히말라야 산맥에서 나오는 소금 덩어리들 있지 않습니까? 어니 그 히말라야 7-8천 미터 되는 그 산들 속에서 무슨 소금이 나옵니까? 옛날에 거기가 바다였다는 얘기 아닙니까? 이런 판들끼리 부딪혀 가면서 융기해 가지고 산맥이 이루어지고 그 거기 숨어 있던 소금기가 나중에 돌처럼 굳어 가지고 암염 같은 것들을 캐내기도 하고, 그런 거 가지고 소금기를 섭취를 하고 짐승들도 소금을 먹어야 되고 그런 것들이죠. 어쨌든 간에 이 지구가 계속 움직이고 있다고 하는 거, 우리 귀에 들리지는 않지만은 지구가 스스로 돌면서 내는 소리, 태양 주위를 돌면서 내는 소리가 어마어마한 것인데 우리겐 들리지 않지만 돌고 있고 움직이고 있고 서로 부딪히고 있고. 여기 2천 년 전에 히브리서 기록자가 무슨 현대 물리학의 지식은 없었지만은, 이게 영적인 통찰력을 가지고 모든 게 다 움직이고 있다 진동하고 있다라고 하는 그런 표현을 사용했다고 하는 것이 참 놀랍다 하는 그런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데 한 가지 이제 뭐 이거는 상식적인 이야기지만은 성서 본문하고 직접 관련은 없지만 제가 판 구조라고 하는 그런 말을 사용을 했는데, 이 판 구조를 발견하게 된 결정적인 시기로 말하자면은 제1, 2차 세계 대전부터입니다. 이게 왜 전쟁하고 지구가 이렇게 서로 맞물려 있고 밑으로 들어갔다가 위로 솟았다가 이렇게 하는 판 구조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을, 특별히 해양 바닷속 지형을 연구를 하다가 보니까 이게 확연히 드러나게 된 거거든요. 1960년대쯤에 이 판 구조가 명확하게 이제 자리를 잡게 되는데, 그게 1, 2차 세계 대전을 통해서 말하자면은 판 구조의 일종의 발견 이런게 이루어집니다. 전쟁을 하면서요. 이게 잠수함도 탐지를 해야 되겠고 또 이 해저 지형을 알아야만이 전쟁도 수월하게 수행을 할 수 있고 전함도 띄울 수 있는 것이고, 이런 것들을 탐지를 하려다가 보니까 바닷속을 연구를 하는 이 판 구조를 발견하는 데 있어서 돈을 많이 투자를 해야 되는데, 거의 대부분이 이 전쟁을 일으킨 큰 나라들이죠. 국방비가 대거 투여가 돼 가지고 투자가 돼 가지고 이 판 구조가 결국에는 발견이 됩니다. 아이러니죠. 전쟁을 하다가 보니까 이런 어떤 과학적인 결과도 얻게 되었다, 판 구조 아직까지는 이 판 구조가 흔들리지 아니하는 그런 이론으로 남아 있는데. 또 다른 예를 들면은 1, 2차 세계대전 특히 2차 세계대전을 하면서 독일의 나치가 유대인들을 600만 명을 학살을 하지 않습니까? 그냥 일방적으로 죽이기만 한 게 아닙니다. 일본이 중국의 관동막 중국의 생체 실험을 했다고 하는 그런 흔적들, 그냥 살아 있는 사람들을 얼려 보기도 하고 불에 지지기도 하고 약물을 투여해 가지고 어떤 반응이 나오나 살펴보기도 하고 그런 기록들을 일일이 다 남겨 놓는, 참 이게 인류의 비극의 상황 속에서 또 인류는 더 발전된 의학 그리고 거기에 따르는 약품 개발 이런 게 동시에 이루어졌다라는 걸 생각해 보면 끔찍하기도 한데, 또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인류의 건강을 위해서도 1, 2차 세계대전의 끔찍한 죽음의 상황들이 지금 우리들에게 무슨 좋은 약품을 접할 수 있는 또 의료 기술을 접할 수 있는 그런 토대를 마련한 계기가 되었다, 굉장한 아이러니입니다. 이 판 구조의 발견도 전쟁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라고 하는 것을 생각을 해 볼 수가 있겠죠. 어쨌든 간에 이게 진동을 한다라고 하는 그런 개념으로 이제 여기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지구 안에 모든 것이 다 그렇게 움직이고 진동을 한다라고 하는 그런 말씀입니다. 자, 이 진동한다라고 하는 개념하고 뭐하고 비교를 해 볼 수 있느냐 하면 시내산하고 비교를 해 보는 거예요. 또 반면에 시온산하고 비교를 해 보는 거예요. 그니까 진동, 변화, 그리고 영원토록 변하지 아니하는 하나님이 계신 곳 시온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 그니까 히브리서 기록자가 상당히 지적인 분이기도 하지만 이런 독자들이 읽으면서 특히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내용을 많이 읽어야 되는데, 봐라 시내산의 그 진동, 움직임, 이런 변화, 자연 세계의 어떤 변화 이런 것하고 하나님께서 온전히 통치하시는 시온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을 덧입고 살아가는 그 삶이라고 하는 것은 흔들림이 없는 거야. 흔들림이 없는 거예요. 또 흔들려서도 안 되는 거다. 이게 바로 시내산과 시온산의 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 한번 구약의 그 시내산 이야기를 한번 그런 차원에서 찾아보는 것도 유익할 것 같습니다. 출애굽기 19장을 한번 펴 보시기를 바랍니다. 출애굽기 19장 16절부터 25절까지 같이 읽어 봅시다. 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기슭에 서 있는데 시내산에 연기가 자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에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여호와께서 시내산 곧 그 산 꼭대기에 강림하시고 모세를 그리로 부르시니 모세가 올라가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려가서 백성을 경고하라. 백성이 밀고 들어와 나 여호와에게로 와서 보려고 하다가 많이 죽을까 하노라. 또 여호와에게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에게 그 몸을 성결히 하게 하라 나 여호와가 그들을 칠까 하노라.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산 주위에 경계를 세워 산을 거룩하게 하라 하셨사온즉 백성이 시내산에 오르지 못하리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가라 너는 내려가서 아론과 함께 올라오고 제사장들과 백성에게는 경계를 넘어 나 여호와에게로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 내가 그들을 칠까 하노라. 모세가 백성에게 내려가서 그들에게 알리니라. 보십시오. 여기 하나님의 임재 장면에 대해서 오늘 히브리서 12장 25절 이하에서 표현하고 있는 핵심적인 용어, 진동한다라고 하는 표현이 등장하잖아요. 많은 학자들이 지금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임재의 그 장면을 여러 가지로 표현을 했는데 그게 다 어떤 일종의 자연의 현상이지요. 자연의 현상인데 우리 사람들이 그런 자연의 현상을 눈으로 목격하거나 몸으로 체험할 때는 모두 다가 두려움에 떨게 되어 있다는 것이죠. 물론 하나님의 임재 자체가 두려움 그 자체이기도 하지만, 그 두려움이 실제적으로 일종의 자연 현상으로 그 두려움을 백성들이 실제적으로 체험하도록 이렇게 임재하셨다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 중요한 것은 뭐냐, 모세와 아론 외에 제사장마저도 감히 경계를 넘어서 하나님께 가까이 할 수가 없도록 되어 있어요. 그게 무슨 산? 시내산이란 말이죠, 시내산. 그런데 시온산의 개념은 예수님께서 금요일 오후 세 시경에 십자가에 달려서 운명하실 때에 성전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고 있었던 그 두껍고 무겁고 화려하게 장식이 되어 있던 뭐가 찢어져 내렸나요? 휘장이, 그렇죠, 휘장이 찢어져 내렸습니다. 그 얘기는 곧 성소와 지성소 왕래가 말하자면 가능하게 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거죠. 다른 말로 말하면 여기 시내산에서 사람들은 감히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는 상태의 시내산이지만, 하나님이 영원히 존재하시고 또 고난받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는 그 시온산은 누구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산의 상징적인 개념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히브리서를 기록한 이분 또는 그 신앙 공동체의 신앙관이 얼마나 깊었는지, 또 그 신앙 복음의 내용을 전파하기 위해서 구약 성경의 상황들이나 내용들을 적절하게 연결하면서도 완전히 차원을 달리하는 그런 내용으로 말씀을 주셨다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시온산의 말씀은 절대적이다. 시내산은 흔들리는 진동하는 그런 산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시온산은 흔들림이 없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영원불변하는 그런 개념으로서의 신앙관, 이것을 아주 확고하게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흔들리지 아니하는 믿음의 나라를 소유한 사람들이에요. 그렇죠? 흔들리지 아니하고 변화되지 아니하는 그 영생의 나라를 은총으로 선물로 받은 사람들이에요. 이게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비록 우리의 몸은 이렇게 저렇게 흔들리고 마음도 흔들리고, 여성들의 마음이 갈대와 같이 흔들린다고 하지만 남자는 안 그렇습니까? 다 똑같죠. 마음도 생각도 몸도 다 흔들릴 수밖에 없지만, 우리 자체로는 도저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사람들인데, 시온산으로 갈 수 없는 사람들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그 저주스러운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흔들리지 아니하고 변함이 없는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그 거룩한 존재들이 되었다, 이게 복음인 줄 믿습니다. 여러분 교회 생활 하시면서 신앙의 삶을 살아가면서 모든 게 다 변화무쌍하게 변화되어 가고 있지만은, 그러나 여러분들의 신앙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이 여정은 흔들리지 아니하고 늘 하나님께 고정되어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만 고정되어 있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고마우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렇게 하여서 저희들이 히브리서 12장을 네 번째 다루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해 보았습니다. 우리의 마음도 생각도 늘 어찌할 바 모르고 흔들리고 또 흔들리고 쓰러지고 또 넘어질 수밖에 없는 그런 인생들입니다. 오늘 우리 한승현 집사님 기도의 내용처럼 시내산은 그런 산이지만은 우리가 이미 와 있고 바라고 원하는 시온산의 이미지는 영원토록 흔들리지 아니하고 우리들이 의지할 바 되는 그런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동행하시는 그 시온산의 개념인 줄 믿습니다. 믿음으로 시온산의 삶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오늘 예배에 참여한 모든 성도들을 붙잡아 주시고 동행하여 주시고, 항상 임마누엘의 은총 가운데 살면서 감사하며 기뻐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김성회장로 2026-10-04 10:52:36
하나님 말씀 보겠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4절부터 29절까지 말씀 교독하겠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4절로 29절입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너희는 만질 수 있고 불이 붙는 산과 침침함과 흑암과 폭풍과 짐승이라도 그 산에 들어가면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령을 그들이 견디지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그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한번 땅만이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아멘. 아멘. 아 오늘은 이제 히브리서 12장을 수요예배 시간에 마지막으로 살펴보는 시간을 삼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집중적으로 살필 내용은 실제적으로는 25절부터 마지막 29절까지이지만은, 이제 지난 시간을 생각하면서 이제 14절부터 우리가 교독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느냐 할 때에 구약 시대에 모세를 통해서 십계명 말씀을 받은 하나님이 엄하게 임재를 하셨던 그런 시내산과 비교를 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부활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시온산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그게 우리 14절 이하를 읽으면서 확인할 수 있는 그런 내용입니다. 그래서 시내산과 시온산이 비교가 되는 두 산들의 어떤 위상 또는 역할, 또 이스라엘 백성들 또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두 산의 의미를 어떻게 찾을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을 해 보게 되는 것이죠. 물론 시내산은 출애굽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던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산입니다. 지금의 사우디아라비아 쪽에 있는 산이 시내산이다 하는 그런 주장도 있기도 하고, 또 시나이반도 보통 성지순례를 가면 오르게 되는 그 시내산 그곳이 시내산이다 하는 주장이 있기도 하지만, 제가 볼 때는 이쪽이든 저쪽이든 간에 이 시내산이라고 하는 이 산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직접적으로 체험을 했던 그런 산이다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근데 이제 히브리서의 기록은 산으로 따지면은 그 의미상으로 보면 시내산은 완전한 게 아니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시온산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체험하는 데까지 이미 들어와 있고 그런 체험이 있어야 된다라고 하는 것을 말씀을 합니다. 지난 시간도 그 시온산에 대해서 잠깐 언급을 했지만 시온산은 실제 존재하는 산은 아니죠. 보통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그곳으로 갈 때에 시온산으로 간다, 그냥 가는 것도 아니고 성전산 자체가 예루살렘 도시 자체도 여리고에서 올라가려면 한참을 올라가야 되는 높은 지대인데 그 높은 지대인 예루살렘에서도 성전이 있는 성전산은 더 높은 곳에 있단 말이죠.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던 곳 그곳, 그것이 이제 성전이 세워진 곳이다라고 그렇게들 이제 우리가 신앙 고백하지요. 모리아산. 그래서 유대인들은 성전이 있는 곳으로 갈 때에 그냥 간다 표현하지 아니하고 올라간다 그런 표현을 사용하는 거예요. 실제적으로 올라가기도 하지만 그런 개념보다도 아 이제 다른 차원에 올라간다라고 하는 개념을 사용하는데, 바로 예루살렘 자체가 또 성전이 있는 그 자체가 시온이고 시온산이다 하는 이제 그런 신앙 고백을 하고 있다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 제가 그 22절 내용을 공동번역 성경을 읽어 보면 좀 더 명확해진다라고 해서 읽어 드렸죠. 그러나 여러분이 와 있는 곳은 시온산이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이며 하나님의 예루살렘입니다. 그러니까 그 성전 중심의 삶을 살았던 유대인들을 생각해 보면, 아 그러면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 중심의 그 사고 체계가 신앙 체계가 아직도 여기에 적용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잘못 읽으면은 그런 착각에 빠질 수도 있겠지만은 그런 내용은 결코 아니죠. 여러분이 와 있는 것은 여러분이 이미 와 있는 것은 시온산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이며 또 하나님의 예루살렘입니다 하는 그 공동번역 성경이 훨씬 더 우리가 22절 말씀을 받아들이는데 좀 쉬운 표현을 사용을 했다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시온산이라고 하는 개념 자체가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실제하는 무슨 우암산이나 백두산이나 소백산이나 이런 산 개념이 아니고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이제 시온산이다 하는 말씀이죠. 하나님이 계신 곳, 하나님의 도성, 그것도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 그렇게 이제 표현을 해 주고 있는 것이죠. 바로 거기에 함께 있는 것이 우리 기독교 신앙이고 영성이다라고 하는 것을 받아들입니다. 이것을 막연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그렇게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이제 중요하겠다라고 말씀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이제 22절부터 23절 또 24절 내용들을 보면 구약의 내용도 포함이 되고, 또 천만 천사라고 하는 개념도 들어 있고, 장자들의 모임이라고 하는 그런 표현도 들어 있고, 또 의인의 영들, 이제 해석이 난무할 수밖에 없는 그런 표현들이 들어 있는데, 하여튼 이 하나님이 계시는 곳 우리가 이미 그곳에 와 있다라고 하는 이 개념만으로 이 말씀의 의미는 충만히 우리에게 전달이 되어진다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더군다나 새로운 계약의 중보자이신 예수님이 계시다, 이 아벨의 피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속죄의 피를 흘리신 예수님이 계신 곳 그게 바로 시온산이다 하나님의 도성이다라고 하는 아주 놀라운 표현들을 이렇게 찾아볼 수가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같은 발음이 들어가긴 하지만 시내산과 시온산의 개념은 이렇게 다르다라고 하는 것을 확인을 해 볼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 22절부터 24절 요 내용만을 가지고도 엄청난 이야기가 나올 수 있고, 뭐 설교도 말할 것도 없고 책으로 만들자고 하면은 수십 권의 책 분량이 나올 만큼의 그런 옛 이야기와 함께 새로운 이야기들 복음의 이야기들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이게 이제 지난 시간까지 살펴본 내용들이 되겠습니다. 오늘 이제 25절부터 마지막 29절까지 이제 마지막 단락의 내용이 됩니다. 저는 이 25절부터 29절까지의 내용의 핵심적인 표현이라고 할까요, 그것을 찾아낸다고 한다면 진동한다라고 하는 표현입니다. 진동한다. 진동한다라고 하는 게 어떤 개념인지 여러분들이 잘 아시지 않겠습니까? 진동한다, 이게 흔들린다. 근데 이 진동은 그냥 가볍게 흔들리는 정도가 아니라 내 존재 전체가 흔들리는 그런 개념으로서의 진동이라고 볼 수가 있겠는데, 25절 이하에 보면 이 진동한다라고 하는 개념이 여러 차례 언급이 되어 있다 하는 것을 찾아볼 수가 있겠습니다. 인간 존재 자체라고 표현을 했는데 하여튼 그 기본적인 토대마저도 흔들리고 뿌리채 흔들려 버리는 그런 개념으로서의 이제 흔들림, 진동이라는 개념으로 이 표현들을 생각을 해 볼 수가 있겠습니다. 사실 이 25절 이하에 진동한다라고 하는 개념,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그런 표현이기는 한데요, 이게 뿌리로부터의 흔들림 존재 자체의 흔들림이라고 하는 개념으로 접근을 해 보면, 지금 이 히브리서를 기록하신 분이 예수님의 제자일 수도 있겠고 아닐 수도 있겠고, 초대교회 아주 유능한 그런 신학자일 수도 있겠고요, 또는 속사도라고 불리는 예수님의 12 제자들로부터 복음적인 가르침을 받은 제 2대 3대 사도라고 할 수 있는 속사도일 수도 있겠고요, 또는 누군지 전혀 알 수 없는 익명자의 그 복음의 글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는데요. 제가 왜 이 이야기를 드리느냐 하면 이게 2천 년 전의 말씀 아닙니까? 현대 물리학에 대한 지식 이런 것이 전혀 없을 때에 여기 25절 이하에 보면 진동한다라고 하는 그런 표현을 사용을 했습니다. 좀 전에 표현한 것처럼 그냥 우리의 몸이 흔들릴 정도 그런 개념으로서 이 진동한다라는 표현을 쓴 게 아니고, 우리 인류로 말하면 인류 전체의 근간이 흔들리는, 또 하나님의 창조 세계로 말하면은 창조 세계 기반이 흔들려 버리는 뭐 그런 개념으로서의 진동이기 때문에, 이런 흔들림 진동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현대의 어떤 학문적인 분야라 그런다면은 현대 물리학 분야죠. 물리학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내용들입니다. 근데 2천 년 전에 무슨 현대 물리학을 공부하신 분들도 아니고 그런 지식을 접한 것도 아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중요한 표현을 여기서 사용을 하고 있어서 오늘 그 점에 좀 초점을 맞춰 가지고 마지막 단락 내용을 좀 살펴보려고 합니다. 자, 현대 물리학적인 개념으로서의 어떤 기반의 흔들림 존재 자체의 흔들림 이런 개념을 알 수도 없었던 그런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현대 물리학이 풀어 주고 있는 것들을 알고나 있는 것처럼 그런 통찰력을 가지고 이런 표현을 사용한 것입니다. 그런 통찰력을 저는 뭐 굳이 제 신앙적인 표현을 해서 표현을 한다면 영적인 통찰력이다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영적인 통찰력. 세계가 진동을 하고 창조 세계가 진동을 하고 그거는 곧 우주 전체가 진동을 한다 하는 개념으로도 이제 생각을 해 볼 수가 있겠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지금 발을 딛고 살고 있는 우리 인식의 세계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이 지구 위에서의 삶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지금 이렇게 가만히 서 있지 않습니까? 가만히 서 있는 게 사실은 그게 이상한 거죠. 왜냐하면은 지구는 스스로 막 자전을 막 돌고 있거든요. 늘 가끔 이야기하는 거지만 스스로 돌고 있으면서 그 도는 그 자체의 힘을 가지고 또 태양 주위를 공전을 하고 있단 말이죠. 자전을 하고 공전을 하고 그런데도 우리는 그런 느낌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지구 중심에서 우리를 붙잡고 있는 중력의 힘에 의해서 이렇게 저도 흔들리지 않고 여러분들도 흔들리지 않고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은, 실제적으로는 지구 속은 그냥 막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렇죠? 그리고 땅이 계속 움직이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나 예를 들면은 이제 판운동이라고 하는 그런 개념이 있는데요. 지구가 완벽하게 둥근 원은 아니지만 럭비공처럼 타원형으로 그렇게 생겼지 않습니까? 약간 기울어져 가지고 스스로 자전해 가면서 이제 태양 주위를 공전을 하고 있는데, 이 지구 자체만 보더라도 판운동이라고 하는 개념을 보면 지구의 껍데기라고 할까요, 계속 움직이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눈으로 볼 때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 발을 딛고 있는 지구 속에서 계속 뭔가가 움직이고 있다, 그 속으로 들어가면 더 말할 것도 없고요. 그래서 바다가 산이 되기도 하고 또 산이 바다가 되기도 하고, 천천히 움직이든 빠르게 움직이든 이런 현상들은 계속 벌어지고 있다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하자면 이 판운동이라고 하는 전문적인 용어이기는 하겠습니다만은, 이 지구의 겉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단단한 암석으로 이루어진 판이 지구 겉면을 여러 판들이 둘러싸고 있다 이제 그런 개념입니다. 작게 보면 일곱 개 판이 있다 그렇게 보기도 하고 하나 더 추가하면 여덟 개의 판이 있기도 하다 그렇게 부르기도 합니다. 아프리카 판이 있고, 남극 판도 있고, 또 우리나라는 조금 비껴 나가 있지만은 일본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태평양 판, 이게 판 중에서 제일 큰 판이라고 볼 수가 있겠는데, 이게 우리 인간의 뇌를 껍데기를 싹 벗겨 보면 하나의 뼈로 이루어진 게 아니고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잖아요. 아시죠 그거는? 여러분들의 머리가 그냥 하나의 뼈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다는 거죠. 마치 그것처럼 지구의 껍데기도 일곱 개나 여덟 개의 커다란 암석들, 서로 움직이고 있는 그런 암석의 판으로 덮여 있다, 이게 이제 판 이론이라고 하는 그런 얘기입니다. 태평양 판이 남아메리카 북아메리카 거쳐 가지고 이쪽으로 꺾어 내려오면서 일본 거쳐서 필리핀 이렇게 호주까지 영향을 끼치는데, 저 태평양 판 여기를 흔히 불의 고리라 그렇게 부르기도 하죠. 제일 큰 판인데 불의 고리, 그래서 지진이 제일 많이 일어나는 곳, 요 둘레로 해 가지고요. 바다 한가운데가 아니라 하여튼 그 판의 가장자리를 통해 가지고 지진이 제일 많이 일어나는 곳, 또 화산 활동이 제일 활발한 곳, 왜냐하면은 태평양 판하고 거기에 있는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판하고 또 부딪치죠. 저 위에 북아메리카 판 남아메리카 판하고도 부딪히죠. 이게 부딪히면서 그 중간에서 그 사이사이에서 지진이 일어나고 화산 활동이 일어나는데, 여기 불의 고리라 불리는 이유입니다. 올해 우리나라 태풍이 그렇게 심하게 오지는 않았잖아요. 일본이 참 우리나라 밑에서 이렇게 가로막아 준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태풍이 몇 개가 사실은 우리나라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쳐야 되는 건데, 오다가 일본 섬나라에 딱 걸려 가지고 일본 쪽으로 확 꺾어 버리고 꺾어 버리고 그러기도 하지 않습니까? 바로 그게 태평양 판이라고 불리는 판인데, 바로 이런 것 때문에 옛날에 아주 옛날에 이 판들끼리 팍 부딪혀 가지고 확 솟아오르면은 히말라야 산맥도 생기고 안데스 산맥도 생기고 이렇게 되는 거죠. 그리고 또 높은 산이었던 곳이 바다 속으로 들어가 버리기도 하고, 그러니까 히말라야 핑크 솔트라고 하는 히말라야 산맥에서 나오는 소금 덩어리들 있지 않습니까? 어니 그 히말라야 7-8천 미터 되는 그 산들 속에서 무슨 소금이 나옵니까? 옛날에 거기가 바다였다는 얘기 아닙니까? 이런 판들끼리 부딪혀 가면서 융기해 가지고 산맥이 이루어지고 그 거기 숨어 있던 소금기가 나중에 돌처럼 굳어 가지고 암염 같은 것들을 캐내기도 하고, 그런 거 가지고 소금기를 섭취를 하고 짐승들도 소금을 먹어야 되고 그런 것들이죠. 어쨌든 간에 이 지구가 계속 움직이고 있다고 하는 거, 우리 귀에 들리지는 않지만은 지구가 스스로 돌면서 내는 소리, 태양 주위를 돌면서 내는 소리가 어마어마한 것인데 우리겐 들리지 않지만 돌고 있고 움직이고 있고 서로 부딪히고 있고. 여기 2천 년 전에 히브리서 기록자가 무슨 현대 물리학의 지식은 없었지만은, 이게 영적인 통찰력을 가지고 모든 게 다 움직이고 있다 진동하고 있다라고 하는 그런 표현을 사용했다고 하는 것이 참 놀랍다 하는 그런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데 한 가지 이제 뭐 이거는 상식적인 이야기지만은 성서 본문하고 직접 관련은 없지만 제가 판 구조라고 하는 그런 말을 사용을 했는데, 이 판 구조를 발견하게 된 결정적인 시기로 말하자면은 제1, 2차 세계 대전부터입니다. 이게 왜 전쟁하고 지구가 이렇게 서로 맞물려 있고 밑으로 들어갔다가 위로 솟았다가 이렇게 하는 판 구조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을, 특별히 해양 바닷속 지형을 연구를 하다가 보니까 이게 확연히 드러나게 된 거거든요. 1960년대쯤에 이 판 구조가 명확하게 이제 자리를 잡게 되는데, 그게 1, 2차 세계 대전을 통해서 말하자면은 판 구조의 일종의 발견 이런게 이루어집니다. 전쟁을 하면서요. 이게 잠수함도 탐지를 해야 되겠고 또 이 해저 지형을 알아야만이 전쟁도 수월하게 수행을 할 수 있고 전함도 띄울 수 있는 것이고, 이런 것들을 탐지를 하려다가 보니까 바닷속을 연구를 하는 이 판 구조를 발견하는 데 있어서 돈을 많이 투자를 해야 되는데, 거의 대부분이 이 전쟁을 일으킨 큰 나라들이죠. 국방비가 대거 투여가 돼 가지고 투자가 돼 가지고 이 판 구조가 결국에는 발견이 됩니다. 아이러니죠. 전쟁을 하다가 보니까 이런 어떤 과학적인 결과도 얻게 되었다, 판 구조 아직까지는 이 판 구조가 흔들리지 아니하는 그런 이론으로 남아 있는데. 또 다른 예를 들면은 1, 2차 세계대전 특히 2차 세계대전을 하면서 독일의 나치가 유대인들을 600만 명을 학살을 하지 않습니까? 그냥 일방적으로 죽이기만 한 게 아닙니다. 일본이 중국의 관동막 중국의 생체 실험을 했다고 하는 그런 흔적들, 그냥 살아 있는 사람들을 얼려 보기도 하고 불에 지지기도 하고 약물을 투여해 가지고 어떤 반응이 나오나 살펴보기도 하고 그런 기록들을 일일이 다 남겨 놓는, 참 이게 인류의 비극의 상황 속에서 또 인류는 더 발전된 의학 그리고 거기에 따르는 약품 개발 이런 게 동시에 이루어졌다라는 걸 생각해 보면 끔찍하기도 한데, 또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인류의 건강을 위해서도 1, 2차 세계대전의 끔찍한 죽음의 상황들이 지금 우리들에게 무슨 좋은 약품을 접할 수 있는 또 의료 기술을 접할 수 있는 그런 토대를 마련한 계기가 되었다, 굉장한 아이러니입니다. 이 판 구조의 발견도 전쟁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라고 하는 것을 생각을 해 볼 수가 있겠죠. 어쨌든 간에 이게 진동을 한다라고 하는 그런 개념으로 이제 여기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지구 안에 모든 것이 다 그렇게 움직이고 진동을 한다라고 하는 그런 말씀입니다. 자, 이 진동한다라고 하는 개념하고 뭐하고 비교를 해 볼 수 있느냐 하면 시내산하고 비교를 해 보는 거예요. 또 반면에 시온산하고 비교를 해 보는 거예요. 그니까 진동, 변화, 그리고 영원토록 변하지 아니하는 하나님이 계신 곳 시온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 그니까 히브리서 기록자가 상당히 지적인 분이기도 하지만 이런 독자들이 읽으면서 특히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내용을 많이 읽어야 되는데, 봐라 시내산의 그 진동, 움직임, 이런 변화, 자연 세계의 어떤 변화 이런 것하고 하나님께서 온전히 통치하시는 시온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을 덧입고 살아가는 그 삶이라고 하는 것은 흔들림이 없는 거야. 흔들림이 없는 거예요. 또 흔들려서도 안 되는 거다. 이게 바로 시내산과 시온산의 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 한번 구약의 그 시내산 이야기를 한번 그런 차원에서 찾아보는 것도 유익할 것 같습니다. 출애굽기 19장을 한번 펴 보시기를 바랍니다. 출애굽기 19장 16절부터 25절까지 같이 읽어 봅시다. 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기슭에 서 있는데 시내산에 연기가 자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에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여호와께서 시내산 곧 그 산 꼭대기에 강림하시고 모세를 그리로 부르시니 모세가 올라가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려가서 백성을 경고하라. 백성이 밀고 들어와 나 여호와에게로 와서 보려고 하다가 많이 죽을까 하노라. 또 여호와에게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에게 그 몸을 성결히 하게 하라 나 여호와가 그들을 칠까 하노라.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산 주위에 경계를 세워 산을 거룩하게 하라 하셨사온즉 백성이 시내산에 오르지 못하리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가라 너는 내려가서 아론과 함께 올라오고 제사장들과 백성에게는 경계를 넘어 나 여호와에게로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 내가 그들을 칠까 하노라. 모세가 백성에게 내려가서 그들에게 알리니라. 보십시오. 여기 하나님의 임재 장면에 대해서 오늘 히브리서 12장 25절 이하에서 표현하고 있는 핵심적인 용어, 진동한다라고 하는 표현이 등장하잖아요. 많은 학자들이 지금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임재의 그 장면을 여러 가지로 표현을 했는데 그게 다 어떤 일종의 자연의 현상이지요. 자연의 현상인데 우리 사람들이 그런 자연의 현상을 눈으로 목격하거나 몸으로 체험할 때는 모두 다가 두려움에 떨게 되어 있다는 것이죠. 물론 하나님의 임재 자체가 두려움 그 자체이기도 하지만, 그 두려움이 실제적으로 일종의 자연 현상으로 그 두려움을 백성들이 실제적으로 체험하도록 이렇게 임재하셨다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 중요한 것은 뭐냐, 모세와 아론 외에 제사장마저도 감히 경계를 넘어서 하나님께 가까이 할 수가 없도록 되어 있어요. 그게 무슨 산? 시내산이란 말이죠, 시내산. 그런데 시온산의 개념은 예수님께서 금요일 오후 세 시경에 십자가에 달려서 운명하실 때에 성전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고 있었던 그 두껍고 무겁고 화려하게 장식이 되어 있던 뭐가 찢어져 내렸나요? 휘장이, 그렇죠, 휘장이 찢어져 내렸습니다. 그 얘기는 곧 성소와 지성소 왕래가 말하자면 가능하게 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거죠. 다른 말로 말하면 여기 시내산에서 사람들은 감히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는 상태의 시내산이지만, 하나님이 영원히 존재하시고 또 고난받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는 그 시온산은 누구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산의 상징적인 개념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히브리서를 기록한 이분 또는 그 신앙 공동체의 신앙관이 얼마나 깊었는지, 또 그 신앙 복음의 내용을 전파하기 위해서 구약 성경의 상황들이나 내용들을 적절하게 연결하면서도 완전히 차원을 달리하는 그런 내용으로 말씀을 주셨다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시온산의 말씀은 절대적이다. 시내산은 흔들리는 진동하는 그런 산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시온산은 흔들림이 없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영원불변하는 그런 개념으로서의 신앙관, 이것을 아주 확고하게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흔들리지 아니하는 믿음의 나라를 소유한 사람들이에요. 그렇죠? 흔들리지 아니하고 변화되지 아니하는 그 영생의 나라를 은총으로 선물로 받은 사람들이에요. 이게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비록 우리의 몸은 이렇게 저렇게 흔들리고 마음도 흔들리고, 여성들의 마음이 갈대와 같이 흔들린다고 하지만 남자는 안 그렇습니까? 다 똑같죠. 마음도 생각도 몸도 다 흔들릴 수밖에 없지만, 우리 자체로는 도저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사람들인데, 시온산으로 갈 수 없는 사람들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그 저주스러운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흔들리지 아니하고 변함이 없는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그 거룩한 존재들이 되었다, 이게 복음인 줄 믿습니다. 여러분 교회 생활 하시면서 신앙의 삶을 살아가면서 모든 게 다 변화무쌍하게 변화되어 가고 있지만은, 그러나 여러분들의 신앙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이 여정은 흔들리지 아니하고 늘 하나님께 고정되어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만 고정되어 있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고마우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렇게 하여서 저희들이 히브리서 12장을 네 번째 다루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해 보았습니다. 우리의 마음도 생각도 늘 어찌할 바 모르고 흔들리고 또 흔들리고 쓰러지고 또 넘어질 수밖에 없는 그런 인생들입니다. 오늘 우리 한승현 집사님 기도의 내용처럼 시내산은 그런 산이지만은 우리가 이미 와 있고 바라고 원하는 시온산의 이미지는 영원토록 흔들리지 아니하고 우리들이 의지할 바 되는 그런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동행하시는 그 시온산의 개념인 줄 믿습니다. 믿음으로 시온산의 삶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오늘 예배에 참여한 모든 성도들을 붙잡아 주시고 동행하여 주시고, 항상 임마누엘의 은총 가운데 살면서 감사하며 기뻐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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